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오백전이 품은 오백 가지 이야기-사교반 정인스님

가람지기 | 2009.11.20 19:37 | 조회 4042

나반존자님

 

마음이 온갖 경계를 따라 굽이치나니 굽이치는 그 자리가 실로 그윽하다네. 이 흐름을 따라 본성을 알아버리면 기쁠 것도 없고 또한 슬플 것도 없다네.

 

안녕하십니까?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오백전 백일기도를 하고있는 사교반 정인입니다

이 게송은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22대 조사인 마노라 존자가 그의 제자 학늑나 존자에게 설해 주었다는 게송입니다.

 

백일기도 입제 몇 일 후 기도를 끝내고 보니 몇 분의 보살님들께서 거조암 오백나한에 대한 명호가 적힌 책을 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명호만 있네요.” 라고 하니 보살님들은 오백나한님 한분 한분의 명호를 부르며 절을 한다고 했습니다. 한분 한분의 내용이 궁금해서 오백나한님에 대한 이야기를 차례법문으로 준비했습니다.

 

나한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를 말하며 사람들은 나한 역시 여러 불보살님들처럼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받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나한이 보살과 다른 점은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실존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나한은 응당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오백나한에 대하여는 여러 경전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증일아함경』이나 『십송률』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인도 코살라국의 사위성에서 500명의 나한을 위하여 특별히 수기를 베푸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오백나한의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우리 운문사는 대표적인 나한 도량입니다. 운문사 오백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는 미륵보살님과 제화가라보살님이신데 정광불 혹은 연등불이라 불리워지며, 좌우로 500분의 오백나한님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오백나한 중 대표되는 나한님은 사리암에 따로 봉안되어 있는 빈두로파라타입니다. 다른 말로는 나반존자입니다.

 

빈두로는 ‘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파라타는 ‘재빠르다. 이롭다’는 뜻의 성입니다. 원래 빈두로는 구자성 우전왕의 대신이었는데 우전왕이 그가 명석하고 성실한 것을 보고 그에게 출가하라고 하였습니다. 힘든 수행을 거쳐 나한과위를 얻은 후, 한번은 그가 아직 계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 자신의 신통력을 자랑하였는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질책을 받고 남섬부주에 거주하지 못하고 서구야니주에 가서 불법을 널리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남섬부주에 스승과 제자를 그리워하다가 부처님께 고향에 내려가게 해달라고 네 번씩이나 원했으나 그때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에게 열반에 들기 전에 영원히 남천의 마리산에서 거주하며 늘 세상에 살면서 중생들을 위해 많은 복전을 가꾸게 했습니다.

 

파라타는 늘 흰머리에 눈썹이 긴 귀인상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나한 신앙은 통일신라시대에 우리나라에 처음 유입되었으며 고려 건국직후(923)년에 태조가 중국 양나라에 보낸 사신 윤질이 오백나한을 모시고 귀국하여 해주 숭산사에서 처음으로 봉안한 이후부터 고려왕실에서는 문종이 신광사에서 나한재를 베푼 것을 시작으로 28회 나한재를 봉행했습니다. 그 이유는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거나 국왕의 장수와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도 왕위에 오르기 전에 석왕사를 창건하고 오백 나한재를 올렸다는 기록과 태종 때와 세종 때에도 나한재가 지속적으로 봉행됐고 이렇게 조선시대에 가장 크게 성행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도의 영험과 신통력을 갖춘 나한의 일화로는 임진왜란 이전 즉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의 어느 동짓날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스님이 새벽에 일어나보니 화덕에 늘 살려두는 불씨가 꺼져 있었습니다. 불씨를 구하려 황령산 보수대로 가서 불씨를 구하고자 했으나 봉수꾼이 말하길 조금 전에 동자승이 와서 불씨도 주고 팥죽도 먹여서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절에는 동자승이 없다고 말하니 틀림없이 마하사에서 왔다고 하며 내려가 보라 하였습니다. 급히 절로 돌아와 보니 화덕에서 불씨가 살아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상해서 나한전에 들어가 보니 오른쪽에서 31번째 나한의 입술에 팥죽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스님은 자신의 나태함을 부끄러워하며 나한님의 신통력에 크게 감읍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운문사 오백전에는, 신통력을 갖춘 나한님의 모습이 서 있거나, 호랑이를 안고 있거나, 엉엉 우는 모습, 찡그린 모습 등 일정하지는 않지만 나한의 얼굴 표정은 대부분 탈속한 고승의 모습으로 근엄하거나 엄숙하기도 하며 해학적이고도 천진한 인간적인 면을 풍겨 친숙감을 줍니다.

 

저는 이런 나한님의 자유자재하고 걸림 없는 모습이 세상에 사는 중생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맡고 있는 법당의 내력과 특성을 이해하고 나니 신심과 정성이 더욱 깊어집니다. 열심히 기도 하겠습니다.

대중스님 정진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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