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지혜가 곧 자비 - 현적스님

가람지기 | 2009.12.20 12:39 | 조회 3340

붉은 노을과도 같았던 단풍이 호거산과 온 도량을 덮은 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도량 내 수곽마다 얼음 꽃을 수 놓으신 동장군의 가슴이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운문사의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정진여일하고 계신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혜가 곧 자비’라는 주제를 가지고 법문을 하게 될 치문반 현적입니다.

현대사회를 지식의 최전선이라 합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출판의 홍수, 정보의 홍수로 인해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상에서 자주 제창되는 지식은 불교의 지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면이 있습니다.
즉 불교의 지혜는 근원적으로 자비와 결부되어 있고, 자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현대적인 지식은 자비가 없는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이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지식의 치명적인 함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불교가 지향하는 지혜가 곧 자비라는 경지가 현대사회를 어떻게 비출 수 있으며 현대의 상황이 불교에 어떤 물음을 던지고 있는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시경전에서 부처님은 평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이것에 대해서 수타니파타에서는 ‘궁극의 이상에 도달한 사람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를 설하고, 그 근본을 이루는 것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일체 생명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무량한 자애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은 일체의 생명 있는 것들이 행복하기를 원하는 서원을 품은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지혜의 참 면목은 대승불교의 모든 경전의 중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역대 조사들이 자기응시를 통해서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고 부처님의 자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으로 관철된 생애가 지혜가 곧 자비라는 장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근대 선지식이신 용성스님의 생애를 살펴보더라도 출가해서 줄기찬 수행과 탁월한 안목의 획득으로 대각운동을 펼쳐서 왜색불교로 전락해 가는 것을 막고 전통 불교를 수호하는 한편 한문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민중을 교화하고 실천하신 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어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중생의 교화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의 세계와 수평선상에 있고, 고뇌에 차 있는 중생의 행복을 서원하는 자비의 마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가 진실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구제의 힘이 되기 위해서는 현대사회가 처해있는 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 가운데에서 더 이상 고통 없고 누구나 위없는 지혜를 얻어 자비를 실천해서 영원한 행복을 이 땅에서 구현한다는 생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전해야 할 때입니다.

요즘이야말로 현대사회의 혼란을 막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 불교의 적극적인 사회참여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지혜를 얻어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수행’을 열심히 해서 사회의 위기와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대승보살도를 구현해야 하겠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동지를 앞두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겨울이 다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동지를 작은 설로 여겨 동지 팥죽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뒤돌아 볼 겨를도 없이 보낸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대중스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작은 설을 미리 세면서 다가오는 새해에는 한국 불교의 미래가 되실 대중스님 여러분과 모든 중생이 다 함께 고통과 질병과 액난에서 벗어나 일년 내 내 무장·무애·무탈하고 행복하시길 두 손 모아 염원하면서 ‘지혜가 곧 자비’임을 주제로 한 오늘의 법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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