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참된 수행자의 길을 찾아서 - 성우스님

가람지기 | 2009.12.20 13:03 | 조회 3648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성우입니다.

가슴에는 커다란 이름표를 붙이고 어설프게 묶은 행전은 자꾸만 흘러내려 몇 번이고 다시 묶었던 치문 첫 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치문 마지막 철 겨울입니다. 지나고 나면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된 수행자의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성현의 말씀 중에 수행자란, 눈에는 잠이 적어야 하고 입에는 말이 적어야 하며 뱃속에는 밥이 적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옛 스님들께서는 새벽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자신의 깍은 머리를 만져보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출가의 길을 가는 수행자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늦깍기인 저에겐 이 말씀들이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내가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을지 적을지도 모르는 어중간한 나이에 다행이 불법을 만나 이렇게 삭발염의 하여 수행자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부처님께 항상 감사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일까요? 수행자에게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아상(我相)과 아만(我曼)이라고 했습니다.

아상은 나의 생각의 틀에 걸려있는 것이고, 아만은 자신의 본분사도 모르고 자신이 최고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것이겠지요, 나의 말만 옳고 남의 말은 우습게 여기는 경우이며 무슨 일을 할 때, “흥, 내가 너보다 못할까봐!”라고 생각하는 우쭐대는 마음, 남이 나보다 잘 하는 것이 있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마음, 남이 하는 일은 다 시원찮아 보이며 내가 하는 일은 다 잘 한다고 우기는 경우 등이 있겠지요. 이러한 경우들이 다 우리의 마음공부에 장애이며 번뇌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머릿속 생각은 잘못이라고 하는데 입으로 딴소리를 하고 행동으론 실천이 안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저 자신도 이 두 가지 번뇌에 걸려서 속을 때가 많습니다. 도반들이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데로 따라주지 않을 때, 인상을 찌푸리며 궁시렁 거리다가 더 심해지면 큰 소리를 치게 되고 거칠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사람 참으면 조용할 것을 꼭 끝장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듯 맞장구를 치곤 합니다. 내게 허물이 없으면 남의 허물도 보이지 않는 법이거늘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후회하면서 마음단속을 못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마음 하나 못 다스리면서 무슨 수행자의 길을 간다는 것인지, 내 자신에게 실망하며 참회 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복잡하고 번뇌로울 때면, 우리가 배우는 치문교재 중에 나오는 좋은 글귀들을 생각합니다. 주옥같은 글들이 많으나 그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대목을 몇 줄 간추려서 소개할까 합니다.

承也者는 以佛로 爲性하고
以如來로 爲家하며 以法으로 爲身하고
以慧로 爲命하며 以禪悅로 爲食함이다.
能忍人之 不可忍하고 能行人之 不能行하며
其正命也에는 丐食而食이라도 而不爲貧 하였음이라.
僧也가 如此어니 可不尊乎아.

승이란 불로서 성품을 삼고,
여래로써 집을 삼으며, 법으로써 몸을 삼으며,
지혜로써 목숨을 삼으며, 선열로써 음식을 삼음이라.
사람들이 인욕할 수 없는 것을 능히 인욕하며, 사람들이 행할 수 없는 것을 능히 행하며,
그가 올바르게 수행정진 함에 밥을 빌어 먹을지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그가 욕심을 적게 가짐에 분소의를 입고 낡은 발우라도 가난하게 여기지 않았음이라.
승이 이러할진데, 어찌 가이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풍요로움과 물질만능 주위에 젖어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탁마하여야 얻을 수 있는 경지일까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한 곳에 모여서 한방에 잠자고 한 솥 밥을 먹으며 함께 공부하는 이런 인연들은 다겁생에 지어놓은 깊은 인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각자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수행자로써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이념으로 부처님의 인과를 믿으며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서로 이해하며 각자 맡은 소임에 충실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바르고 참된 수행자가 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부처님 은혜 갚아감이 옳지 않을까요? 조금은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지금 이 순간순간들이 승려로써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되고 살림살이가 된다는 걸 알기에 참고 인내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참된 수행자의 길을 찾아 이 도량에 왔으며 이곳에서 그 길을 찾을 것입니다. 이 길에는 참다운 도반들이 있어 내가 흔들릴 때 잡아주고 아플 때 보듬어 주는 도반들과 함께 하니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따뜻한 눈길로 격려를 보내주는 도반스님들을 저는 아끼고 사랑합니다. 졸업하는 그날까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 법문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지금 도랑에는 동장군의 입김으로 꽁꽁 얼어붙어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지만 저 들녘에 나무들은 맨몸으로 겨울을 견디어 내며 죽은 듯이 있다가 봄이 오면 온갖 꽃을 피어대며 새 옷을 갈아입듯이 우리들도 이 겨울이 지나면 더욱 의젓한 모습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09년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는 모든 대중스님들이 더욱 건강한 한해가 되시길 발원하며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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