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 아현스님

가람지기 | 2009.12.20 13:12 | 조회 3287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아현입니다.

저는 오늘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대중 스님의 시간을 지체하려고 합니다.

여기 구멍이 난 컵이 있습니다. 12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물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단, 구멍에는 어떠한 조치를 취해서도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형체 없는 물을 구멍이 난 컵에 가득 채울 수 있을까요?

상이목소 옆 소임자 정랑의 화장지 받침대는 이 나간 뚝배기입니다. 이 뚝배기는 밥상 위에서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서 스님들을 환희롭게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과거가 되었고 밥상 위는 쌩쌩한 어린 뚝배기들에게 자리를 넘겨 준 지 오래됐습니다.

후원에서 같이 지내던 청국장 뚝배기는 퇴직 후 온실의 화분으로 취직했습니다. 맥반석 뚝배기는 명색이 귀한 몸인지라 향로가 되어 날마다 다지고 닦이며 사랑받고 있습니다. 돌솥 표 뚝배기는 바둑이 밥그릇이 되어 날마다 혓바닥 목욕을 합니다. 그러나 된장 뚝배기는 뜻밖에도 정랑에서 똥, 오줌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만약 이가 조금 나간 것이 아니고 딱 깨졌더라면 뚝배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형상이 없어진 뚝배기는 큰 것에서 작은 것, 온 세상과 온 허공을 모두 담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법화경 약초유품에서는 세존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십니다.

<세간에 물을 머금은 구름이 나타나듯이 부처님께서도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 세간의 보호자이신 부처님은 삼계에 집착해서 신체가 말라 시들어진 중생들에게 법음으로써 비를 내리신다. 언제나 깨달음을 주제로 하여 같은 소리로 법을 설하신다. 마치 구름이 평등하게 비를 내려 초목을 흠뻑 적시는 것처럼. 나는 전 세계를 법의 비로 만족하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훌륭히 설해진 일미의 법을 각자의 근기에 맞게 각기 다르게 생각한다. 마치 풀이나 관목, 약초, 교목이나 거목 등이 모두 나이와 능력에 맞게 물을 빨아들여 마음껏 생장하듯이. 중생들에게는 원래 차별이 없으나 의욕이 다르므로 차별되게 생장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언제나 참으로 평등하다고 안다면 영원하고 상서로운 열반을 아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래는 큰 구름이고 법음은 비입니다. 비를 맞는 초목은 중생입니다. 평등하게 내리는 비를 여러분은 얼마큼 받고 계십니까? 도를 묻는 스님에게 조주스님은 찻잔에 차를 넘치도록 따라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그릇이 작으면 큰 것을 담을 수 없소.’

된장, 화분, 개밥, 향, 정랑의 화장지? 여러분은 어떤 것을 담고 있는 뚝배기가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뚝배기가 무엇을 담고 있는가는 1차원적인 문제입니다.

뚝배기조차 없어져 담을 것이 있고 없고를 여읜 것이 열반일 것입니다.

대중스님 정진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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