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에게 하듯이 - 무견스님

가람지기 | 2009.12.20 13:15 | 조회 3194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무견입니다.

저희 반은 지금 금강경 오가해를 배웁니다. 모두들 귀한 가르침으로 양식을 삼으며 경반으로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금강경의 묘행 무주분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보살은 마땅히 상에 주하지 않는 보시를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얼마전 일입니다. 한 보살님이 승용차를 운전하고 오는데 자꾸 뭔가가 거칠게 끌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걸어가던 사람들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는데도 정작 운전자는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동차 범퍼 안쪽에 물이 가득 찬 커다란 통이 끼어들어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고 있었고, 뒤에 따라오던 자동차들은 계속 빵빵거리고,.. 운전자는 내리지도 못하고 당황해서 어쩔줄몰라 하고만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한 분이 우산을 내려놓고 그 물통을 잡아당겨보는데 그 상태로 얼마나 운전을 해왔는지 물통은 너무 꽉끼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이 함께 도와서 한참만에 간신히 물통이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겹게 그 문제의 물통과 씨름을 하던 분은 내려놓았던 자신의 우산을 집어들고 가던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안했다는 듯이 말입니다. 운전자가 미쳐 정신을 차려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이었습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아주 큰 감동이고 가르침이었습니다. “아! 바로 이거구나.” 저는 그 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집착하지 않는 보시를 보여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일을 하나 하고나서는 남이 모를까 걱정이 되어 “나 잘해줬다.”하며 자랑을 해서 한 방에 복을 날려버립니다. ‘이 물건 필요한 사람 있으면 주자.’하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친소를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구는 내 맘에 안드니까, 누구는 나와 조금 친하니까, 누구는 이 물건을 소중하게 쓰지않을거야 이렇게 말입니다. 누가 돈이 필요하다고 할 때, 있어서 주면 그뿐이어야 하는데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꼭 확인하고 참견을 하기도 합니다. 나를 내세우고 내 행동에 집착을 하는 것입니다.

상에 집착하지 않고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보시를 하면 대허공과 같은 복이 되지만, ‘내가 보시를 한다.’는 생각이 붙으면 그저 작은 복이 될 뿐 깨달음을 이루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부처님께서는 날마다 날마다 애타게 알려주고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보시하면 우리 학장스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 학장스님께서 “나는 아직까지는 무주상보시는 하지않아요.”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그렇게 하시는 것이 권선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하신 일을 알림으로 인해 대중스님들이 ‘나도 그렇게 해야지.’하며 좋은 마음을 내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지, “이거봐요, 내가 이러이러한 곳에 보시를 했어요.” 이런 자랑 섞인 마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중에 불사를 할 때면 당신께서 먼저 보시하시고는 꼭 대중을 동참시키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른스님들을 따라 하고나서 ‘내가 했다’는 相만 내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너는 안했지?”하며 다른 사람을 가벼이 여기며 교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한다는 마음이 아니라 나에게 하듯이 그렇게 말입니다. 나에게 하듯이.......

참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습하다보면 더 잘 해지지 않을까요? 공부도 하면 더 잘해지고, 일도 그렇고, 잠도 자꾸 자다보면 더 잘잘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多聞만으로는 절대로 불법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처럼 배운 것을 사유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배우지 않은 것만 못할것입니다. 삶속에서 매순간 집착없는 보시를 행하려고 애쓰고 애쓰는 운문인이 되어야겠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여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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