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함께하는 마음 - 혜벽스님

가람지기 | 2009.12.20 13:17 | 조회 3127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혜벽입니다.
운문사에도 눈이 내리길 발원하며 열어볼까 합니다.

겨울산에 눈이 내리면 모난 것이 다 덮어져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더불어 같이 하는 공심으로 살아가면 서로서로 포근한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공심은 ‘나를 세우지 않으며 전체를 위하는 마음’에 대해서입니다. 공심의 원동력은 우리 모두에게 갖추어져 있는 자성부처와 함께 하는데서 나온다고 봅니다. 자성부처는 곧 공심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날 도량을 걷다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바깥에 의지하지 말고 자성부처와 함께 해결해 보자’ 이렇게 입력한 후로 저의 습관 중에 바뀐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힘들고 답답한 일이 있으면 바깥으로 다른 사람을 찾아서 풀곤 했는데 자성부처에게 먼저 고하고 함께 하려고 하게 된 것입니다. 안으로 돌려놓으니 정말 내 탓으로 인정이 되고 ‘힘든 일들도 나의 모난 것을 둥글려 주는 도반이구나 ’하는 긍정적인 마음이 생겼습니다.

경전을 통하여 나를 세우지 않는 공심을 배우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 중에서 깊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대혜스님의 서장 가운데 누추밀(樓樞密)에게 보내신 편지를 볼 때입니다. 유마경의 내용을 인용해서 말씀해 주신 부분이 빛이 나면서 금덩어리처럼 들어왔습니다.

“유마힐 거사가 말씀하시길, ‘부처님께서는 아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음욕, 성냄, 어리석음을 떠나야 해탈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아만을 완전히 떠난 사람들에게는 음욕, 성냄, 어리석음의 성품 그 자체가 해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淨名이 有言하대 佛爲增上慢人하야 說離婬怒癡라사 爲解脫耳어니와 若無增上慢者인댄 佛說婬怒癡性이 卽是解脫이라)”

부처님께서 아만이 있고 없고의 근기에 따라 이렇게 다른 방편을 쓰신다는 것에 매우 놀랐습니다. 제 아만을 지적해주시는 것도 같아서 참 시원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더 넓게 안아서 바다와 같은 마음이 되게 하소서!” 하는 발원을 올렸습니다. 바다가 어떠한 것도 버리지 않고 다 받아들여 맑은 물로 만들듯이 어떠한 것이든지 배척하는 게 아니고 버리는 게 아니고 받아들여서 쓰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마음으로 힘들어하던 인연들이 하나, 둘 풀렸습니다.

나를 내려놓을수록 여유가 생기며 대중스님들도 선지식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름불교학교에서 소임을 맡았을 때입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님들이 보여준 정성어린 마음은 저로 하여금 전체를 위한 공심을 많이 챙기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특히 어린이 발우를 깔 때는 방송관계상 자리배치가 자주 바뀌어 여러 번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은 내색 없이 밝은 마음으로 임하던 스님들의 모습은 구정선사와도 같은 구도심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렇게 대중스님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안고 어린이들과 자비명상을 할 때입니다. 두루두루 감사의 마음을 보내다가 대중스님들 차례가 오자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손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는 얼굴과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어린이들 중에서도 함께 우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캠프가 끝난 후 어린이소감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운문사 여름캠프가 1등으로 가슴에 새겨졌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나를 버리고 전체를 위하는 공심으로 뭉칠 때 여러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음을 느끼며 더욱 더 공심의 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들이 나를 익어가게 도와주는 도반임을 잊지 말고, 어느 곳에 처하시든지 바른 법 빛내어서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선지식들이 되시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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