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출가의 시절인연 - 선진스님

가람지기 | 2010.04.13 15:38 | 조회 4497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었지만 설현당 옆의 매화는 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었기에 향기가 더욱 진한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선진입니다. 제가 오늘 주제로 정한 내용은 출가의 시절 인연입니다.

누구에게나 처음 생각해 보게 되는 출가는 떨림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아무리 편한 마음을 가지려 해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늦은 나이의 출가라 망설이는 시간이 3년이나 걸렸습니다.
스님 상은 타고 나는 것인지, 사주팔자에 스님이라고 나와 있는 것인지,
괜스레 안 되는 일에 억지를 부리고 있지는 않는지 망설임과 주위의 만류뿐이었습니다.
출가라는 것이 나 자신의 결단력이 필요한데 망설임만 거듭되었습니다.
새벽3시에 일어날 수는 있을까?
노래도 못하는데 염불은 잘 할수 있을까?
일도 많다는데 내가 다 견뎌낼수 있을까?
갖가지 불안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다 지인의 소개로 몇 해 전에
운문사를 졸업하신 비구니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출가는 망설이면 망설임만 거듭될 뿐이니 과감히 행동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스님들은 시절인연따라 그리고 당신 근기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니
출가가 늦어진 것은 세속에서 겪어야 할 과정을 다 거친것 뿐이니
지나온 세월을 아까워 말고 시절인연이 지금 온 것 뿐”이라고 하시면서
제 수첩에 출가에 필요한 준비사항을 적어 주셨습니다.
맨 마지막 줄에 부처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큰 환희한 마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출가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생활속에 빠져 사소한 일이나 힘든 상황에 직면할 때는
오직 부처님의 법만을 생각하고 길을 가라고 했습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제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갈 길에 대한 확신이 서자 두려움도 조금씩 없어지고 각오도 세웠습니다.
가족과 지인의 만류에 100일 출가만 하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저는 은사스님을 만나 삭발을 하고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은사스님과 아이들 3명 단촐한 독살이에서의 행자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강원 생활은 계를 받고 남들보다 20여일 늦게 입학은 하였지만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습니다.
말 귀를 알아듣지도 못하고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작년 봄 차례 법문때 저기 저 자리에서 상반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면서 스님들도 모두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었는데 나 자신이 너무 힘들다보니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눈물도 나고, 나도 할수 있겠다하는 다짐의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출가하여 스님되기가 어찌 작은 일이랴
몸뚱이의 편안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등 따습고 배불리 먹고 싶어서가 아니며
이익을 바라고 명예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직 생사 문제를 위함이며 번뇌를 끊기 위함이며
부처님의 혜명을 잇기 위함이며
삼계를 벗어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니라.

마음을 다 잡고 싶을 때나 크고 작은 일에 진심이 일어날때는 선가 귀감의 이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몸뚱이의 편안함을 구해서가 아니라 하면서 조금의 자투리 시간만 있으면 지대방에 눕거나 잡담하기가 일쑤입니다. 늦은 출가인 만큼 세속의 습도 많아 버려야 할 것도 내려 놓아야 할 것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가는 만큼 무엇인가가 저를 채워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에 따른다(盡人事 待天命)는 말이 있듯이 하나하나 배워가고 익혀가는 가운데 저의 강원생활도 영글어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철이 지나고, 두 철, 세 철, 어느 덧 1년이 지났습니다.대중생활이 무엇인지, 왜 강원에 왔는지 하나하나 이해가 되며 조금씩 달라져 가는 제 모습과 제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나 농사를 지을 수는 있지만
아무나 농사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나 출가를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스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다고 했는데 불법을 만나 삭발 염의한 수행자가 되어서 처음 발심한 때는 잊고, 작고 사소한 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 모두 내어 놓지만 마음 돌이키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은 조금씩 중물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혼자 생각 해 봅니다.

내 것이 없다는 도리가 터지면
그것이 곧 보시바라밀의 시작이요.
내가 옳다는 생각이 없으면
곧 인욕바라밀의 문이 열리는 것이요.
올바르게 사는 일이 당연한 일이라는 확신이 열리면
그것이 곧 지계바라밀이 되는 도리입니다.
그래서 그 복이 한량없다고 합니다.

대중 스님 여러분!시절인연 따라 만난 도반스님들 소중한 인연입니다. 아무나 갈수 없는 수행의 길에 도반이라 더욱 더 소중한 인연입니다.나날이 바쁘게 돌아가는 강원생활이지만 가을볕에 감이 익어가듯 우리의 강원생활도 조금씩 속이차고 익어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진 여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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