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보시행 - 도근스님

가람지기 | 2010.04.13 15:46 | 조회 3502

안녕하십니까?
길고도 길었던 치문.
치문1년이 수행생활 8년을 한 것과 같다는 선배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집반 도근입니다.

봄의 상징인 여러 가지 새싹 풀꽃들이 피어나는 이 계절을 맞아 저 자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스님들 앞에서 법문을 하게 되어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저의 행자시절 때의 경험담을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행자시절 설거지 할 때 절대 더운물 사용을 금하셨던 은사스님. 냉장고 문도 오래 열어두면 절대 안 되고, 반찬통을 꺼낼 때도 냉장고가 다치지 않게 꺼내어야 했던 매운 시집살이. 그때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출가하기 전에는 물건 같은 것을 크게 아낀다는 생각 없이 살았던 저의 잘못된 습관의 옛 모습들을 상상해 보며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몸에 베이기 시작해 이렇게 무엇이라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생활하는 것 그 자체가 보시의 길이기에 지금은 물건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루게 되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이 순간 저는 나도 몰랐던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잘못 산 줄도 모르고 은사스님의 말씀들이 그때는 듣기 싫고 짜증까지 났었는데 지금 이 순간 저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얘기는 저에게 늦게나마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고 행하여야만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현대 사회를 가르켜 다원화시대 또는 정보화 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생활방식이 다양해짐에 따라 사회는 전문적으로 분업화되어 직업만 해도 3만종이 넘고 대학의 학과가 천오백개나 되어 문화도 음식문화, 교통문화, 종교를 비롯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자과학이 발달해 버튼만 누르면 인터넷에 온갖 정보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질이 발달하고 종교가 많으면 정신도 풍요로워야 하는데 오히려 민심은 각박해지고 스트레스는 더욱 쌓이며 우울증 환자는 계속 늘어납니다. 이것이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의 모습이며 병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상생하면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출가하기 전에 속가 보살님을 따라 절에서 법문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가기 싫었지만 그럴 때 보살님이 너무도 화를 내셔서 억지로 갔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법문으로 사람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한평생 살면서 많은 병을 앓게 되는데 그 중 반이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경질이 많으면 위장병이 오고, 화를 잘 내면 간을 다치고, 남의 탓만 하면 폐가 나쁘고, 애를 태우면서 살면 심장에 이상이 오는 등 우리의 오장육부가 모두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성내고 싸우고 원망과 슬픔에 빠짐이 많아지면 이런 것들이 모두 병이 되기 때문에 너그럽고 밝게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종교학론 한 분과 불자라면 누구나 독송하는 천수경을 함께 하면서 느낀 것이 많을 것입니다. 천수경에는 관세음보살이 여서서 종류의 중생을 제도하는 6향이 있습니다. 아약향도산에서 시작해 화탕 지옥 아귀 수라 축생으로 이어지는 육도 중생들입니다. 도산은 칼산이니 칼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면 자신이나 남에게 항상 상처를 줍니다. 화탕은 끓는 탕이니 밤낮으로 제 속도 끓이고 남의 속도 끓이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지옥은 마음의 문을 닫고 온갖 고통을 만들어 내면서 사는 것입니다. 아귀는 자기만 알고 이기적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수라는 투쟁적이고 남을 눌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축생은 본능적인 것만 좋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이 중생계인데 모두가 마음에서 나옵니다. 아무리 현대 사회가 과학이 발달하고 우주를 날아 다녀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중생심으로만 산다면 결국 인간은 과학의 노예가 되고 여섯 지옥의 세계가 될 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로 우리 불가에서는 경전. 참선. 염불을 비롯해 많은 수련법이 있고 그 실천행이 보살의 육바라밀입니다.

저는 육바라밀 중에서도 첫째인 보시행이 우리의 마음, 특히 현대인의 중생심을 다스려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감로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시는 자비심과 청정심으로 주는 것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보시에는 법을 전하고, 경전을 간행해 나누어 주는 법보시, 재물로 베푸는 재보시, 재물이 없어도 몸과 말과 생각으로 남을 도와주는 보시, 양보 겸손한 마음등 여러 가지 보시가 있습니다. 이러한 보시는 모두 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마음,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행하기 때문에 준다거나 베푼다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사실 보시는 귀한 행인만큼 실천하기 힘든 일입니다.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 하거나, 도움 받은 것은 쉽게 잊어도 도움준 것은 잊지 않거나 돕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 의식입니다. 이렇게 닫힌 마음 작은 마음을 열린 마음과 큰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보시입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감사하고 은혜롭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남을 위하고 잘되게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나환자들과 행려병자들을 친족처럼 돕는 분들과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는 분들을 비롯해 남이 알던 모르던 묵묵히 보시행을 하면서 사는 분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봅니다. 최근에는 나눔의 문화가 정착되어 조금씩 소리 없이 퍼져가기도 합니다.

‘보시’ 그것은 아름다운 행이자 사람이 살아가는 참 의미이며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늦게 출가하여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만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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