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기도 - 법진스님

가람지기 | 2010.04.13 15:52 | 조회 3307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법진입니다 .

아직은 사교라는 명칭이 익숙하지 않습니다만, 본의건 타의건 시간이 흘러 벌써 사교에 들어섰고 드디어 부처님 경전을 공부하고 있으니, 저로서는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치문반 시절부터 어떤 주제로 법문을 준비해야할까를 고민했는데, 사교가 되어 차례법문 일정을 듣고서야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보다도 내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것,

정말 힘들고 지쳤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야겠다.' 라고 말입니다.

한편으론 왠지 보잘 것 없는 제 살림살이를 내 보인다는 것이 좀 창피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할지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제 살림살이 한 켠 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해드릴까 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대중스님 여러분께서 대부분 알고 계시듯이 저는 대중이 다 아는 병고자였습니다. 아직 과거형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좀 이른 감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로써는 운력 등 모든 생활을 함께하고 있으니, 조심스럽게 이제 병고자라는 이름표를 떼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정신없이 대중생활에 적응하는 치문 첫 철을 무사히 보내고, 여름철이 반쯤 지났을까요? 운력 도중 허리를 삐끗했는데, 다음날 자고 일어나니 허리를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제 몸인데도 불구하고 제 의지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 많이 당황 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부상은 여러 차례 거듭되어 급기야 겨울철에는 허리가 너무 아파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신체가 끊임없이 아프고, 대중생활도 제대로 동참하지 못하다 보니, 제 생각과 감정, 마음까지도 점점 날카로워지고 편협해 졌습니다.

함께하는 도반스님들에게 가지는 미안한 마음은, 제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날카로운 말들로 표출되었고, 당연히 도반스님들의 반응도 좋게 돌아올 리가 만무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나날이었습니다.

대중속에서 대중과 함께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모두들 밖에서 운력할 때 혼자 지대방에서 혹은 간당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제 스스로 어리석은 망상만을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 아, 나는 더 이상 대중에 있으면 안되겠다, 다른 스님들에게 너무 미안해서라도 더 이상 피해주지 말고 이곳에서 빨리 나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야"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힘든 시절, 겨울방학이 되어 본사에 돌아가 은사스님을 뵙자마자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 스님, 저 강원 그만두면 안 되나요? 도저히 도반스님, 다른 대중스님들에게 미안하고, 면목이 없어서 살 수가 없어요.

그리고 승가는 자비문중이라더니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그저 말일뿐이었어요. 저 강원 그만 두게 허락해주세요 스님.

스스로 않지도 서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이렇게 말하는 제 모습에 은사스님께선 참 기가 차셨을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저의 이런 하소연을 조용히 듣고만 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시끄럽고, 일단 병원에 입원부터하고 몸부터 추스르고, 잡생각하지 말고 기도부터 열심히 해라."

그길로 바로 입원한 저는 방학 장기출타 기간 동안 광명진언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하며 생각해 보니 행자시절부터 하던 기도인데, 아프면서부터는 아예 기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시간만 나면 망상만 일삼았던 제 모습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열심히 아무런 생각을 떠올리지 않고 광명진언만을 외우기 시작하니, 차츰 마음이 안정되고, 머릿속에 두서없던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은사스님께 강원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말씀드리면서 했던 말들, 대중스님네 보기 미안해서라는 말은 온전히 미안한 제 마음이 아니었고, 제 자신의 아상, 그리고 자존심을 꽉 부여잡고 놓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좀 더 하심하지 않고, 좀 더 기도 하지 않고, 그저 환경 탓만 하며 마음 단도리 못하고 스스로를 방치하여 얻어낸 결론 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무조건 나에게만은 자비가 베풀어지길 기대하고 바라는 저의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퇴원하여 은사스님께 다시 여쭈었습니다.

" 스님 잘못했습니다. 제 생각과 마음가짐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 생각해 보니, 강원 가기 전에 스님께서 말씀하신, " 니 본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알겠다만 니 얼굴에 교만함이 가득한 거 알고 있나? 전생업 이겠지만, 그런 얼굴이 없어지도록 기도 열심히 하고, 무조건 하심해야 한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 저는 그 말씀이 이해도 안가고 조금 서운하기도 했는데, 기도하는 중에 제 몸이 아픈 문제보다도, 마음속 깊이 있어 느끼지 못했던 저의 교만함이 도사리고 있어 그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 다시 대중에 돌아가서 하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스님께서는 " 그래 업을 바꾸는 일이 그렇게 쉽겠나? 돌아가서 잘 살고, 항상 기도하고,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법진이 니가 자비 문중이라고 거론했으니 말하는데, 자비는 니가 받으려 한다면 그건 자비가 아닌 것이다. 자비는 내가 행하고 남에게 베풀어 줄 수 있을 때 자비인 거다. 잘 생각해 보고, 가서 잘 살아라."

이렇게 돌아온 운문사. 사집의 봄, 여름, 가을까지 잘 지내는 구나 싶었습니다.

운문사의 김장

그동안 몸이 아파서 함께 하지 못했던 일들이 자꾸만 생각나서 좀 더 열심히 돕고 싶은 마음에 조금 무리를 해 일을 했더니 다시 병고자가 되어 도반 스님들과 대중스님, 또 은사스님께 누를 끼쳐 너무나도 죄송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행동에 따른 결과였지요.

또 다시 입원, 하지만 제 마음은 치문반 시절의 그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빨리 다시 일어나서 대중과 함께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사집의 마지막 관문이랄까요?

자비도량참법기도를 하면서 참회하고, 또 발원하였습니다.

모든 절을 다 따라하진 못했지만 제 힘 닿는데 까지 힘껏 기도하면서 " 부처님 세세생생 지은 죄업 참회합니다. 더 신심내고, 하심하며 열심히 수행하는 법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마음속의 아상과 교만을 떨쳐버리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제 보잘것 없는 기도가 조금은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대중스님들께서 보기에도 제 모습이 건강해 보이시나요?

지금에서야 말씀드리지만, 그동안 제 모습을 지켜봐 주신 대중스님네께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하고, 또 감사를 드립니다.

치문반에서 사교가 되기까지 갖가지 병고를 겪으면서 저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앞으로 수행을 해 나가면서 더 많이 배우고 느끼겠지요.

요즈음 저는 항상 참회하고, 하심하고, 신심내고, 발원하고, 기도 정진하는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 스스로 다짐을 합니다.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지요. 하지만 몸이 아프고 마음이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나가는 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불자라면, 수행자든 수행자가 아니든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기도 정진하여 이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아프고 힘들 때 마음에 힘이 되었던 보왕삼매론의 한 구절로 저의 차례법문을 마치고자 합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교만해 지기 쉽나니, 병고로써 스승을 삼을지니라."

대중스님,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오며, 다시한번 부처님과, 대중스님네께, 그리고 저의 은사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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