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지심(至心) - 장주스님

가람지기 | 2010.04.13 15:58 | 조회 3383

세상에서 가장 마음을 따듯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해 주는 단어를 하나 찾으라면, 그건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량수경에는 이런 말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이어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진정한 수행자의 사랑은 그 영원까지도 뛰어 넘는다”라고요. 안녕하십니까? 일체 만물과 영원까지 뛰어넘는 사랑을, 그러한 진정한 자비를 실현하고픈 사교반 장주입니다.

지난 겨울방학에 무슨 법문을 할까? 고민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운문사를 나오신 저희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 스님도 강원시절에 차례법문 하셨어요?”라고요. 그랬더니 저희 스님께서는 “그럼 당연하지! 난 막대 측이라서 대교 때 했는데, 사람들이 날 보고 막 웃더라. 내가 좀 당당했거든.” 그러시는 겁니다. 그래서 전 또 거듭 여쭤보았습니다. “스님! 무슨 법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하죠?”라고요. 그랬더니 대답하시기를 “널리고 널린 게 법문인데, 뭘 걱정을 하니? 중요한 건, 진실한 마음 하나면 돼! 마음과 마음은 서로 통하잖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이 일시에 아주 편안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법문 때문에 고민을 했던 이유는 이 차례법문이 강원생활 4년 동안에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에 우리 대중스님들 가슴에 무언가 기억에 남는, 그리고 어떠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특별한 법문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여운보다도 진실한 마음하나 담긴 평범한 법문이 오히려 가슴에 더욱 와 닿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니 그만큼 편안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평범했던 저의 강원생활 중에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일들로 이 자리를 함께 해볼까 합니다.

입학한 첫 날의 일이었습니다. 강원에 대해 들은 얘기가 있어 잔뜩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문사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강원생활이 생각만큼 어려워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속으로 ‘이정도 강원생활쯤이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정랑 앞 수곽물이 수질이 가장 안 좋다는 사실을 몰랐던 저는 수곽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새벽예불을 갔습니다. 그리고 예불 중에 배속에선 난리가 났고, 예불 끝에 곧바로 구토를 하고 말았습니다. 혼비백산 했던 정신을 추스리며 전 이내 반성을 했습니다. ‘용이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 꼭 법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구나! 내 생활, 내 마음가짐 그 순간순간에도 해당되는 것이구나! 쉬워도 쉽다는 생각, 어려워도 어렵다는 생각을 내지 말며, 그저 항상 무엇에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만 살아야겠구나’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렇게 첫날부터 혼 줄이 난 저는 그 덕에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습니다. 첫 철 소임으로는 종두를 살게 되면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부지런히 뛰어다녔고. 저를 비롯한 저희 반 스님들 모두 ‘죽을래야 죽을 시간도 없다’라고 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었습니다.

무사히 한철을 보내고 기다리던 첫 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전 작압전 부전을 살게 되었고, 하단 부전스님들은 각 구역 청소시간에 비로전에 가서 청소를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로전 청소를 혼자하게 된 어느 날. 비로자나 부처님을 향해 크고도 작은 원을 세우고, 지극한 마음의 향 하나를 사르며 열심히 부처님 앞에 놓인 화로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처님한테서 연두색의 불빛이 아주 화려하게 반짝반짝이며 눈이 부시도록 빛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누가 장난을 치는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주위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조용했고, 순간 부처님이 앉아 계신 연화대에 조명을 설치 해 놓아서 그런 줄 알고 ‘아이디어가 참 좋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청소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반 스님 누군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혹시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앉아계신 연화대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느냐고요... 그런데 그런 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속으로 ‘부처님께서 열심히 잘 살라고 광명을 보여 주셨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이참에 기도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때쯤 죽림헌에서 시자스님들이 출타를 해서 누군가가 죽림헌에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왠지 가고 싶은 마음에 처음엔 “제가 갈께요!”라고 말을 했지만 소임 때문에 이러저러한 일들로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섭게도 말은 씨가 된다는 말을 절감하게 해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날 저녁에 후원에서 후원 걸레를 빠는 도중에 갑자기 누군가가 옆구리를 후려치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도반스님들은 어서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난리였지만 도저히 그 몸을 이끌고 병원까지 갈 자신이 없었고, 그 일로 죽림헌에 아픈 사람이 올라가야 한다 해서 결국 제가 죽림헌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몸은 점점 회복되었고,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고는 시자 스님의 경상위에 올려진 작은 책자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운문사에서 나온 광명진언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내용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구절이, 광명진언 백 만번을 하면 대지혜가 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침 이거다 싶은 생각에 그때부터 열심히 광명진언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사집 가을부터는 잠을 줄이고 밤 11시에서 12시까지 좌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피곤하지 잠은 오지 참선인지 잠선인지 모르는 좌선을 하면서 용을 쓰고, 새벽 방선 후엔 지장전에 가서 기도를 하고 그 이후의 짬짬이 남는 시간은 관음전과 지장전을 오가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마음만큼 몸이 따라 주질 않아 수업시간엔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습니다. “過猶不及”이라했는데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 했던 것은 아닌지, 모든 것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한 것 같아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도 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집 겨울방학이 되어서는 아직 내가 업장이 두터운가보다 싶은 마음에 만분의 부처님 명호가 들어있는 “만불명호경”을 사서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3천배를 하던 날. 지극한 마음에 대한 감응이었을까요? 그날 밤 꿈속에서 보살계를 주시는데, 누군가가 제 팔에 그윽한 향기의 향을 아주 깊숙이 꽂아 주셨습니다. 물론 금강경에서는 “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 하여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고는 하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했던 그러한 기도의 감응들은 아직까지 공부길이 멀기만 한 저에겐 때때로 더 열심히 정진할 수 있는 계기이자 경책이 되어주곤 합니다.

이상으로 지금까지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그동안의 저를 돌아보며 느낀 것은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의 삶, 마음먹은 대로의 삶을 살기 마련이다’라는 것과 결국 우리가 진정 성불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매일같이 불보살님을 향해 지심귀명례를 하듯, 부처님을 향한 그리고 일체 중생을 위한 지극한 마음을 여의지 않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 수행자로써의 우리의 작은 노력들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1분 1초도 귀히 여기며 맑고 향기로운 수행자로 거듭 나기 위해 남은 강원생활을 더욱더 열심히 살아 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더불어 이 자리를 빌어 운문사를 갈까 말까 고민을 하는 저에게 아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운문사만을 고집하셨던 저희 은사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대중에서 사는 것이 身‧口‧意 삼업을 조심할 수 있어 큰 복이다”라는 말처럼, 이 아름다운 도량 운문사에서 이렇게 많은 대중스님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끝으로, 머지않은 그 어느 날에 우리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이심에 가섭이 지어보인 그 미소를 서로가 서로에게 기쁜 마음으로 띄워 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성불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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