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는 누구일까 - 현담스님

가람지기 | 2009.01.04 10:42 | 조회 3475

금당산 옥상봉에 올라 행주를 널면서 ‘나는 누구일까’를 생각해 본 일이 있으십니까? 오늘도 진짜 현담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 사교반 현담입니다.


금당에서 첫 밤을 보냈던 입학날, 첫 철 종두는 운문사의 꽃이라는 상반 스님의 말에 혹해서 4대 1의 가위바위보 경쟁을 거쳐 종두 12대장에 제 이름이 올랐습니다. 그 땐 몰랐습니다. 첫 철 종두가 어떤 소임인지를.

처음이기 때문에 더 힘들고, 처음이기 때문에 더 까다로운 소임인 종두를 살면서 그저 하루하루 사고 없이 살 수 있기를 기도했던 제 마음과는 달리, 저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금당에 불려가야 했던 사집반 7대장 스님의 눈빛은 나날이 매서워지기만 했습니다. 넘쳐나는 전달사항과 잦아지는 종두 모임 속에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제 마음과는 달리 반 스님들도, 윗반 스님들도 ‘저 사고뭉치’하는 싸인을 계속해서 보냈으니,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그래도 저희 반 스님들은 저를 믿고 이해해주며 지난 3년이라는 시간동안을 함께 했습니다. 그 고마운 시간 속에 늘어난 것이 있으니, 바로 제 별명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예쁜 속명이, ‘현담下’로 불린 지난 2년이, ‘하’라는 글자를 뗀 지난 1년이 모두 별명으로 제게 돌아왔으니, 그 많은 별명을 짓느라 애 쓴 반 스님들의 창의력에 되려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또 다행스러운 것은 모두가 긍정적인 의미의 별명이라 부르는 사람도 듣는 저도 기분이 좋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건으로 반 스님들의 넋을 빼 놓은 제가 별명으로라도 웃음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생각해 봅니다.

그 예쁜 속명과 현담이라는 지금의 이름, 반 스님들이 애정을 담아 불러주는 많은 별명들 가운데 진짜 나는 누구일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름을 갖고 살아갑니다. 스님이라는 이름, 누군가의 딸이라는 이름, 학인이라는 역할과 친구일 수도 스승일 수도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그 많은 이름과 역할들 속에서,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요?

저의 이런 고민에 대해서 ‘오직 모를 뿐’이라는 책 속의 숭산 큰스님은 “생사를 초월한 진정한 자아는 언제나 청정하고 순수한 가치이다. 만일 그 하나뿐인 청정하고 순수한 가치를 깨달을 수 없다면 ‘오직 모를 뿐’이란 마음으로 들어가라. 있는 그대로 두어라! 오로지 영겁의 세월을 쉼 없이 노력하고 노력하며, 또 노력해라. 그러한 노력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잠이 많아 발우시간에 삼천배는 기본으로 할 수 있고, 실수가 많다보니 ‘부반장 살 수 있겠어요?’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만은 확고합니다. 내게 주어진 일을 피하거나 물러서지는 말아보자. 부처님 슬하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언젠가는 부처님과 같은 인격자로서 뭇 중생에게 착하고 착한 이웃이 되어보자.

우리 반 스님들이 저를 믿고 늘 저를 응원해 주는 이유는 그런 제 마음을 마음으로부터 알고 있어서일 겁니다.

“마음으로부터의 변화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많은 이름들 가운데 오직 하나, 언제라도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제 마음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이 실수에서 출발한 우스개 별명이라 하더라도 저를 대표하는 이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은사스님을 존경하고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두 저를 대표하는 역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제 역할을 엮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 부처님과 같은 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봅니다.


푸른 숲도 붉은 단풍도 이제는 다 사라져 삭막한 것만 같은 겨울입니다. 하지만 목련나무를 자세히 보셨나요? 매운 겨울바람에도 봄 햇살같이 포근해 보이는 껍질 속에 하얗게 피어날 꽃송이를 품고 있습니다. 저마다 품고 있는 진정한 나를 화려하게 꽃 피울 새 봄을 기다려 봅니다.

대중스님 정진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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