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희망의 속삭임 - 원명스님

| 2009.01.04 10:59 | 조회 2953


대중스님, 반갑습니다. 사교반 원명입니다.

얼마 전에 본 헬렌 켈러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의 한 구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만일 단 사흘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안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날이 저물고 다시금 어둠이 닥쳐올 때, 이제 다시는 자신을 위한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자, 이제 그 사흘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여러분의 눈길을 어디에 머물게 하고 싶습니까?”

아시다시피 헬렌 켈러는 생후 7개월 때 앓은 열병으로 인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설리번이라는 스승을 만나고 스스로의 노력에 힘입어 수려한 문장력을 가진 문필가로, 장애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회사업가로 이름을 날린 인간 승리의 대명사입니다.

이번에는 제 아버지 얘길 잠깐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처사님은 어릴 때 앓은 열병으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소아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때문에 제 기억 속 처사님은 똑바로 서 있거나 바르게 걷는 모습을 보여주신 적 없는 분이십니다. 게다가 일찍 돌아가셔서 딱히 추억이랄 것도 없는 분이지만, 제게는 영웅이십니다. 몸 좀 아프고 돈 좀 덜 벌어도 직업을 가진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았고, 진실함 속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이 가진 몇몇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보면, 우리 주위에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웃이 많이 있습니다. 평범함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은 그 노력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넘어진 아이가 손을 털고 일어나듯, 그들에게 장애는 불편함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이상적인, 사회의 긍정적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그네들에게 비추어볼 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는 건강할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부터 장애를 앓고 있는 이른바 ‘정상인’이 더 위험한 존재가 아닐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저 역시도 그런 장애인에 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신체를 갖고서도 게을러서 하지 않는 일이 더 많고, 나보다는 남탓 상황탓을 하며 진실하지 못하고, 만족할 줄 모르고 남 원망하기를 밥 먹듯 하니, 멀리는 헬렌 켈러, 가까이는 아버지께 빗대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 있다면,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다는 점입니다.

위대한 스승이요, 의사이신 그 분을 만나고 그 가르침을 만나 적어도 잘못하고 있음은 알아차렸습니다. 이제는 부처님과 나, 그리고 우리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철썩 같이 믿고, 여러 선배 스님들의 자취를 따라 살아봐야 할 일입니다. 이 길을 살아보겠노라고 제 발로 걸어 들어왔으니,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할 일입니다.

어차피 사람의 한 목숨 살아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껏 겪은 일 보다는 겪어야 할 일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좌절한 채 엎어져 있어야 할 요인이 아니라 딛고 일어나야 할 기회일 수 있습니다. 손가락 몇 개 없이도 피아노를 치고, 팔 다리 없이도 일반 올림픽에 당당히 출전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미 세상을 뛰어 넘어 보겠다고 큰 소리 친 수행자에게 진정 장애라 할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차례법문을 앞두고 일찌감치 악몽을 꾼 일이 있습니다. 대중이 모일 시간은 다가오는데 법문용 원고를 잃어버려 온 도량을 헤매며 한숨을 쉬다가 도량석 목탁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인수인계 받은 스텝대로 법상에서 무사히 내려가 대중스님들을 향해 합장 저두 할 일만 남은 지금, 전 또 다른 자유를 찾은 기분입니다. 마음을 짓눌렀던 하나의 과정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성불하는 순간이 온다면, 여러 생에 걸쳐 겪어왔던 사건 사고가 지나가버린 차례법문처럼 별 일 아니었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사흘 아닌 단 세 시간뿐이라 하더라도, 전 삭발염의 한 지금 이 모습을 여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세 시간을 위해 장애라 불리는 많은 것들 앞에서 고민도 발악도 실컷 해 볼 작정입니다.

벨 듯이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도 우리 앞에 놓인 장애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여러 대중 스님들과 하나의 이름, 하나의 모습임에 감사하는 저녁입니다.

대중 스님,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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