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도반과 함께하는 풍경 - 선묵스님

가람지기 | 2009.03.25 10:43 | 조회 2981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 녹은 개울물과 산과 들녘에 생명의 기운이 온누리에 퍼지는 이 봄이 감회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강원에서 배우는 생활 속에 공부라 그런지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기엔 내게 새로운 지적, 비젼을 열어주는 도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그 다름이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우리는 더불어 생활합니다. 작년 이맘때 한날에 같은 곳에서 출발을 함께 했지만 모두가 다른 마음으로 다른 것을 꿈꾸며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이기보다는 혼자이고 싶은 도반, 함께이고 싶은 도반, 그렇지 않은 도반, 시간을 정말 열심히 사는 도반, 한 실수도 용서가 되지 않는 도반들을 보고 느끼는 것은 달랐습니다. 1년을 보내면서 도반들과의 생활에서 어렵고, 기뻐하고, 가장 아쉬워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어떤 도반은 작은 일에서라도 좀 더 따뜻하게 친절하게 대해 주려고 한 마음을 서로 이해하고 배우려한 열정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도반도 있지요? 함께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강원의 생활을 만들어 간다면 그 과정 자체가 자신의 근기를 단련하는 엄청난 공부가 될 터이니 도반들과 함께 한 것은 이래저래 남는 장사 아닙니까?


도반들과 함께 하는 공부법은 모든 순간들을 학습하고, 지식, 기술, 경험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도와주는 순간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고 아주 행복한 일상의 모든 순간이 공부가 되며, 누구든 배울 수 있고 누구든 가르칠 수 있습니다. 또 더 이상 배울게 없을 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줄게 없을 만큼 모자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결국 모든 도반이 배움의 흐름에 들어가게 되지요. 스승인 "師友"의 의미 같은 것입니다.

도반들이 없다면 좀 더 양질의, 좀 더 합리적인 것을 지향하는 토대가 없겠지요. 동시에 나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가 뒤 섞일 때 전혀 다른 종류의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독송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지식과 마음의 소리가 극복됩니다.


거꾸로 쉽게 말하면 글 읽는 소리를 신선이 구름 위를 거닐고, 천녀가 거문고를 뜯는 소리에 비유들 합니다. 글 읽는 소리를 싫어할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것 바로 도반들의 촛불 태우듯 재잘거리는 독송소리입니다.

돌이켜보면 힘든 치문반 일정을 거쳐 마침내 한라산에 오르는 것처럼, 일정 자체도 버거울 뿐 아니라 머리가 터질듯 한 인수인계를 감내해야 하고 거기다 부작용 실수까지 동시에 견디면서 높은 사집에 오른 것은 평범한 도반들의 웃음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스승과 벗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발원하신 분이 있다면 발원의 내용에 하나를 더 추가하시면 어떨까요. 여기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다고 멋진 스승들은 얼마든지 있고 또 인생의 굽이굽이 마다 나를 이끌어줄 존재들은 계속 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언제 어디서건 능동적인 생활에 들어가는 순간 똑같은 일상을 살더라도 새로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안의 그 어떤 정해진 틀만 버리면 새로운 가능성은 무안히 열려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훌륭한 도반들과 보냅니다. 성품이 똑 부러지고 깐깐한 도반, 뿔테 안경을 끼어서 더욱 야무진 인상을 주는 도반, 말을 할 때는 선·후와 조리가 있는 도반,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를 잘 기울여 대화와 소통을 하는데 시원한 도반, 또 수행담에 대해 해박하고 밝아 함께 자리를 하면 시간가는 것을 잊게 하는 도반, 여기 저기 귀여운 도반들, 가끔씩 엄살을 부리는 도반들과, 생각과 사고의 차이가 너무 심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느껴지게 하는 도반들을 보면서 그간 내가 갇혀 있던 어떤 틀을 보게도 되고, 조금 더 너른 시선으로 색안경이나 편견 없이 나 자신을 살펴보는 지혜를 문득 깨닫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40명 모두가 함께 하는 아름다운 회향이 될 수 있도록 작은 서원을 해봅니다.


첫째, 참회해서 마음을 깨끗이 청소해 복과 덕을 채우며 삽시다.

둘째, 나와 남이 모두 행복하게 되는 발원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셋째,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넷째, 언제나 수행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다섯째, 새가 허공을 날더라도 허공에 새 발자국이 없듯이 내 마음에 미운

사람을 두지 말고 누구든지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삽시다.

여섯째, 늘 은혜를 알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일곱째, 말을 조심하고 남의 말을 좋게 하며 삽시다.


대중스님 여러분 마음을 고요히 하고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십시오. 과연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도반들에게 어떠한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밝게 해 주는가? 어떻게 보면 쉽게 할 수 있을 듯이 느껴지지만 실상을 실천하기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믿고 공부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행복한 수행자가 되시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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