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운문사에서 산다는 것은 - 명진스님

가람지기 | 2009.03.25 11:03 | 조회 3423

안녕하십니까!

밝은 明, 참 眞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를 늘 발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 걱정만 하는 사집반 명진입니다. 저는 지금 운문사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와 운문사의 첫 인연은 한참 전의 일이지만 가깝게는 몇년전 운문사 도량 안내를 받으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운문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넓은 도량과 많은 스님들, 이목소에서 양치질하는 스님까지 멋져 보이면서 나도 모르게 ‘나도 이 좋은 도량에서 공부를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 생각은 ‘운문사’ 만이 최고의 강원이라고 믿고 계시는 노스님과 운문사를 졸업하신 저의 은사스님, “내가 운문사에서도 살아보고 동학사에서도 살아봤지만 그래도 운문사가 더 좋더라. 명진스님 운문사로 가세요.” 라고 말씀하신 사숙님 덕분에 2% 부족한 체력을 걱정하며 운문사 行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自의 반 他의 반으로 시작된 운문사 생활은 생각보다 더 많은 체력을 요구해서 걱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봄철에는 한 달간 감기를 앓았고, 여름철에는 허리를 다쳐서 반 스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보냈고, 가을에는 종두소임을 사느라 안간힘을 쓰고, 겨울철에는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바쁘게 보내다가 ‘치문의 꽃’이라는 겨울방학 때에는 가위, 바위, 보에 져서 종무소 상시자 소임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운문사에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힘들 때는 ‘내가 결정을 잘못했나.’, ‘내가 무엇을 믿고 여기에 왔지’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의 갈등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멋진 먼 산을 바라보며 ‘명진아, 강원에서 첫 철만 버티면 4년 살 수 있대’ 라는 자기 최면과 먼 산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경치, 우리 반 스님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아픈 데를 어루만져 주는 손길들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운문사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치문반 스님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지 걱정이 되시지요. 제가 일 년을 살아보니까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많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때로는 상반스님들의 말이 억울했었지만 그 얘기가 왜 나왔는지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한 번 더 되돌아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서 나를 생각해 주는 나에게 약이 되는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하반인 치문반 스님들이 들어오면서 더욱 잘 알게 되었습니다. 상반이 되어서 한 번 더 챙겨주는 말이 결코 쉬운 일인 것만은 아닌 줄을 알게 된 것이지요. 또 운문사에는 벽에도 귀가 있고 돌에도 눈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대중들이 있기에 힘이 들지만 대중이 많아서 나를 볼 수 있는, 나를 비쳐주는 거울이 되어주고, 나를 갈고 닦아 주는 탁마석이 되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또 대중들이 많아서 재미있는 일, 좋은 일들도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메뚜기들이 들판을 지나가면 깨끗해지듯이 밭에 있던 많은 풀들이 대중스님들이 한번 스쳐 지나가면 ‘언제 그 자리에 풀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깨끗해지는 것과 또 많은 배추들이 다듬어지고 절여져서 맛있는 김장 김치가 되는 것을 보면서 같이 일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미소만 지을 뿐 소리 내어 웃으면 안 된다.”는 얘기에 미소만 짓다가 강원에 와서 출가한 후 처음으로 수업 시간이나 선녀탕에 갔을 때 활짝 웃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일 년 살면서 좋았던 것은 ‘치문경훈의 대의는 꼭 알아 두세요’ 라는 강사스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 뜻을 놓치지 않으려고 없는 시간 쪼개어 난자 외우고, 쪽지시험 보고, 講 받치고 했던 시간들이 있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사집반이 된 지금은 ‘ 지혜로운 수행자가 되기를 바란다.’ 는 강사스님의 말씀과 선가의 본보기, 선가의 네비게이션이라는 선가귀감의 한 글귀인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스님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안일함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등 따시고 배부른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명예와 이익을 구해서도 아님이라 생사를 위한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혜명을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서 뛰어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인 것이니라.”


는 말씀과 서장에 나오는 편지글을 한 편지 당 300번 이상씩 읽어서 文理를 틔워 보고자 합니다. 이것도 물론 강사스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인데 무조건 믿고 열심히 한번 해서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이래서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구나.’ 하는 자기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운문사에서 남은 3년, 2% 부족한 체력을 걱정하면서 살겠지만 운문사에서 사는 동안 이 곳이 내가 중노릇을 하는데 필요한 자양분을 만드는 곳이라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면서 멋지게 지혜롭게 살아볼까 합니다. 운문사에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할 아주 멋진 곳이며 행복처라 생각하면서 우리 반 40명 스님들과 대중 스님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흐트러지면 떠올리는 짧은 편지글을 소개하면서 마치겠습니다.


明眞 學人 示

不忘 出家本分하고 常念 善財求法하라


대중 스님 여러분, 행복한 운문인이 되시기를 부처님 전에 발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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