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발우공양 정신으로 나의 식습관 되돌아보기 - 상현스님

가람지기 | 2009.03.25 13:31 | 조회 4189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상현입니다.

저는 다른 스님들에 비해 밥을 좀 많이 먹는 편입니다. 발우공양 때나 찬상공양 때나, 밥이든 국이든 반찬이든 가리지 않고 다 많이씩 먹어서 옆에 앉은 스님을 놀라게 하곤 했습니다. 그런 제가 지난 겨울방학 내내 오후불식을 했습니다. 오후불식을 시작한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다만 은사스님께서 오후불식을 하시는데 나 혼자 먹자고 밥 차리고, 치우고 하는 것이 번거로웠고 또 방학 때 절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든 시간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와 저녁시간에 법당에서 절을 했는데 오후불식을 하면서 절을 하니 몸이 가벼워서 절하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니 어느새 머리도 맑아지고 특히 새벽마다 천근만근이던 몸도 가뿐해졌습니다. 저는 예상치 못했던 신기한 몸의 변화를 느끼면서 ‘수업시간에 배운 ‘경안(經安)’의 상태가 바로 이런게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습관과 수행이 얼마나 직결되는지를 온 몸으로 체험하면서 수행자에게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고, 운문사에서 매일 아침 펴는 발우 공양 속에 음식에 대한 수행자의 태도가 다 녹아 있다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발우공양에 깃든 정신을 대중스님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발우공양은 자기의 위치와 차례를 꼭 지키며, 게송 이외에는 말을 하지 않고, 움직임이 없는 동안에는 항상 단정하게 앉고, 수저 소리나 음식 먹는 소리를 내지 않으며, 한 번 받은 음식은 남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런 원칙 뒤에는 평등, 절약, 감사, 발원, 자비 등 불교의 수행정신이 모두 깃들어 있는데 오늘 차례법문에서는 법공양 때 암송하는 [소심경(小心經)] 즉, 식당작법에 포함된 게송을 통해서 발우공양에 깃들어있는 정신을 살펴보겠습니다.


[소심경]의 전체적인 내용은 첫째, 부처님을 회상하면서, 그 공덕을 찬탄, 공경, 예배하고, 둘째, 모든 중생의 노고와 은혜를 고맙게 여기며 셋째, 자신의 하루 수행생활을 돌아보고 넷째, 모든 배고픈 중생들과 함께 평등하게 나누어 먹겠다는 자비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각각의 게송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발우를 펴기 전에 사대성지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佛恩想起招偈 (블은상기게)’이고, 두 번째는 발우를 펼 때 암송하는 ‘展鉢偈 (전발게)’입니다.

如來應量器 我今得敷展 願共一切衆 等三輪空寂

“부처님 때부터 전해진 응량기를 내가 이제 받아 펴오니 원컨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삼륜이 함께 청청하게 하소서”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十念佛(십념불)’입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노사나불...’등으로 이러지는데 일반적으로 십불이란 동진의 도안(道安) 법사가 제정하여 공양시에 염송하도록 한 열 분의 부처님으로써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미륵존불, 무량수불, 문수보살, 사리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일컫습니다. [소심경]의 십념불에서는 무량수불과 대세지보살이 생략되고 나머지 8분의 부처님만 염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공양을 시작하기 전에 어시발우를 정대하고 암송하는 ‘奉鉢偈봉발게’입니다.

若受食時 當願衆生 禪悅爲食 法喜充滿

“이 공양을 받을 때 모든 중생들이 다 같이 선열의 음식으로 법의 기쁨 가득하여지이다”


다섯 번째는 ‘五觀想念偈 (오관상념게)’ 입니다.

計功多少量彼來處 忖己德行全缺應供 防心離過貪等爲宗

正思良藥爲療形枯 爲成道業應受此食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출가자가 공양할 때 생각해야할 다섯 가지를 오관이라고 하는데 첫째는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농부의 노력의 귀중함이나 시주의 은혜를 생각해야 하고 둘째, 자기의 행위를 반성하여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고 셋째, 탐, 진, 치의 악심을 여의고 좋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고 넷째, 음식은 기갈을 쉬고 병을 다스리는 좋은 약이라는 뜻을 생각해야 하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오로지 도를 닦아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게송은 자비심으로 귀신에게 공양을 베푸는 ‘出生偈 출생게’입니다.

汝等鬼神衆 我今施汝供 此食遍十方 一切鬼神共

“너희 귀신들에게 내 이제 공양을 베푸노니 이 음식이 시방에 두루하여 일체의 귀신들은 공양할지어다.”라는 뜻입니다. 이때 귀신용 수저인 생반시로 귀신에게 공양할 밥알을 뜨고 윗자리부터 차례로 헌식기를 돌려 생반을 모으고 그러는 동안 왼손의 엄지로 무명지를 눌러 감로인을 결하면서 이 게송을 송하게 됩니다.


일곱 번째는 발우 씻은 물을 아귀가 마시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비는 ‘絶水想念偈 (절수상념게)’입니다.

我此洗鉢水 如天甘露味 施與餓鬼衆 皆令得飽滿

“나의 이 발우 씻은 물은, 하늘의 감로수와 같은지라, 너희 아귀들에게 베푸노니, 모두 배부를지어다.”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공양을 마치면서 이웃들에게 공양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는 ‘食畢想念偈 (식필상념게)’입니다.

飯食已訖色力充 威振十方三世雄 回因轉果不在念 一切衆生獲神通

“공양을 마치니 색력이 충만하고, 위의가 시방삼세에 떨치는구나, 인(因)을 돌려 과(果)로 바뀜을 마음에 두지 않고, 일체중생은 부처님의 신통을 얻을지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공양에 대한 짧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드리는 것으로 저의 차례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옛날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출가한 스님들의 수행이 깊어가는 것에 불안해진 마구니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먹을 것이 없으면 승단이 힘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탁발 나온 스님들께 아무것도 공양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승단은 힘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수행이 깊어가고 더욱 융성해졌다고 합니다. 고민 끝에 마구니들은 수행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공양물을 넘치게 펑펑 퍼주도록 마을 사람들에게 시켰습니다. 그러자 마구니들의 바람대로 물질적 풍요에 빠진 수행자들은 게으르거나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타락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공양물이 끊이지 않고 다양한 메뉴로 하루 세 끼 공양이 이루어지는 운문사에서 대중스님들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십니까? 혹 배고프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먹거나, 쉽게 음식을 버리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반찬 투정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음식으로 나의 수행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한번쯤 되돌아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정진불퇴면 성불이라는 고구정녕하신 큰스님들의 말씀을 믿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불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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