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에 행복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 당경스님

가람지기 | 2009.03.25 13:39 | 조회 3285

반갑습니다. 대교반 당경입니다.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설현당으로 짐을 옮긴 지 한 달 정도 지났습니다. 치문 때, 그렇게나 높아 보이던 설현당 뜰방이 계단 하나 높이 밖에 안 되고, 사집 때, 그렇게나 즐거워 보이던 설현당 큰방이 담담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오히려 "지대방 넓고 분주해서 즐거웠던 금당이 좋았어."라고 추억한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흉잡힐까요?


우리들 인생에 반짝이지 않는 순간, 행복하지 않은 순간은 없습니다. 알면서도 느끼지 못해 과거를 그리워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지금, 행자 때부터 들어 온 은사스님 말씀이 귓가를 두드립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인데..."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이라고 스스로를 도닥거리던 어느 날, 은사스님의 말씀에 뿔이 돋았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내가 물새는 바가지라면 행자 노릇 하는 동안은 바가지 땜질하는 기간이다. 누가 봐도 말짱한 바가지가 될 수 있게, 땜질, 또 땜질 해 보자!

결심은 거창했지만,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5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땜질해야 할 구멍은 많기만 합니다. 누군가 화끈하게 지적해 줄 수 있게 뻥 뚫린 구멍이라면 마음이 좀 편할 겁니다. 정랑에서 나오는 길에 보면 급하다고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신발이, 나도 모르게 커져있는 웃음소리가, 카페인 섭취량과 무관하게 찾아오는 졸음 등, 자기 합리를 통해 여지껏 모른 척 해 온 자그마한 구멍들이 자꾸만 균열을 넓혀 가는 것만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수도 없이 따라 외웠습니다. "계의 그릇이 온전해야 선정의 물이 고이고, 선정의 물이 고여야 지혜의 달이 뜬다."

따지고 보면 달이 지구를 떠나지 않은 채, 늘 그 자리에 있듯이 지혜의 달도 늘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 겁니다. 다만 내 계행의 그릇이 온전하지 못해 선정의 물이 고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달그림자를 담아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운문사에서의 마지막'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 봄철, 마지막 여름, 마지막 방학들을 눈앞에 두고, 감히 대중 스님들께 제가 이곳에서 배운 바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가 삭발 염의한 것은 부처가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갖추고 있는 불성을 찾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4년은 그 선택에 확신을 더하기 위한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땜질하고 깎아 나가는 겁니다.

'수능만 치고 나면'이라고 꿈꾸는 고3 수험생에게 꿈꾸던 자유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또 다른 현실과 시험이 기다리고 있게 마련이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엄이 되고 졸업을 하면-이라고 꿈은 꾸어 보지만, 현실은 행자 때와 다름없는 생활의 일부분이 이어집니다.

어차피 어느 곳도 이상향과 똑같을 수 없는 현실과 생활의 일부분이라면, 이곳의 불합리함을 탓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며 에너지 낭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밝게 빛나고 있는 지혜의 달빛과 다름없어지는 그 순간을 꿈꾸며 능동적으로 불합리한 부분을 점차 고쳐 나가고 모자란 부분을 메워 나가는 새는 바가지 땜질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 절친한 친구라는 말을 줄여서 절친이라고 합니다. 이 생소한 단어 앞에서 한 스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절친이란 절집 친구이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도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49명의 절집 친구 도반 스님들, 감사합니다.

또 운문에 모인 대중 모두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지나고 보면 늘 반짝이고 있는 오늘에 지치지 않는 수행자 되시길 발원해 봅니다. 우리들 모두가 부처님의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길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대중스님 모두 행복하시길...




sung04_1237955999_9.jpg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