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부처님은 멀리 계시지 않는다 - 범찬스님

가람지기 | 2009.03.25 13:47 | 조회 3208

“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모든 것 오직 마음이 지어냄이로다. ”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부처님을 알고 나를 알고자 마음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대교반 범찬입니다.


여러분은 운문사에 와서 무엇을 얻어 가고 있으십니까?

저는 처음 출가하던 날부터 이곳 운문사와 인연이 닿아 있었습니다.

출가를 결심하긴 했으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탓에 친척보살님의 소개로 들어선 운문사가 낯선 유배지같이 두렵고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웅전과 비로전을 오가며 기도한 덕에 하루하루를 신심 있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기대와 설렘 속에서 만난 은사스님과의 첫 대면은 그동안의 외로움과 답답함을 한 번에 날려줄 만큼 시원했습니다.

‘그래. 부처님이 따로 멀리 계시지 않는구나. 우리스님 미소만 닮아도 부처님 미소를 배우는 것이며 따뜻하게 건내는 말 한마디에서 부처님의 자비가 묻어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때 정든 운문사와 은사스님을 두고 다시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시작된 선방에서의 본격적인 행자생활....... 차가운 첫인상에 무섭기만 한 선방 도감스님이 행자로 발을 내딛은 저의 첫 스승이셨습니다.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야하는 두려움과 첩첩이 쌓인 일은 물론 공부거리에 대한 책임감까지 가중되어 지금 돌이켜보아도 캄캄하게만 느껴집니다.


출가 전에 본 법정스님의 책에 의하면 홀로 차를 마시고 홀로 글을 쓰며, 때로는 기도하고 수행하며 자연과 함께 하나 된 오롯한 산중생활의 중노릇이라고 생각했었는데.......법정스님의 책속에 속았다고 억울해할 틈도 없이 막내 행자의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무서운 줄로만 알았던 도감스님은 잘 된 일엔 크게 칭찬하시다가 또 반면엔 잘못한 일에는 무척 엄하게 걱정하시며 내안에 들어갔다 나오신 것처럼 아직 덜 영글은 중물 안 든 마음을 잘 파악하셨습니다.

위로 있었던 7명의 행자님들도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의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시간들도 잠깐. 함께 공부하고 일하는 가운데 점차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서로 적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쳐 몇 가지 에피소드로 말하기도 어려운 그 시간은 분명 운문사에서 보내야 하는 4년에 대한 준비과정이었을 겁니다.


운문사에 와서도 대중의 화합 속에 조용히 묻혀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내성적인 성격은 더 내안에 빠져 웅크리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엔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려는 듯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드러내지 못한 채, 끙끙 앓으며 속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엔 그 마음의 병이 간염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대중스님들 모두가 피검사를 받게 하고야 말았으니, 없는 듯 있는 듯 살고 싶다는 저의 작은 바람이 산산조각 난 대형사고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며 얻은 것이 있습니다.

치료기간 내내 걱정해주고, 작은 수술비라며 손 내밀던 손길들, 병균덩어리라고 놀리면서도 지대방에 감금하다시피 휴식시간을 주며 나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마음을 알려준 고맙고도 소중한 반스님들.......그들 한명 한명의 마음이 저에게는 너무도 빛나는 보석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문때, 짝지 얼굴도 잘 모르는데 강요받은 화합은 우리가 부대껴 온 시간 속에 아주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비추며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거절당하기 싫다는 이유로, 반스님들이 바빠 보인다는 핑계로 옆사람에게 부탁의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는 제 모습이 있습니다.

그럴 때 먼저 나서서 왜 말하지 않았느냐며 등을 두드리며 반스님에게서 처음 은사스님을 뵈었을 때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부처님과 보살님은 늘 곁에 계십니다.

나를 걱정했던 상반스님, 오늘도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반스님. 멀리서 행자때부터 나를 알아온 선방도감스님, 그리고 주위에 계시지만 잘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한 은사스님까지.......

홀로 가는 인생길, 힘든 수행의 길이라지만 혼자서 살 수 없는 이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인연이 많다는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반스님들이 가장 가까운 불보살님으로 4년을 함께했듯이 저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운문에 모인 200여명의 부처님들..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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