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하늘을 덮고도 남는 복 - 도현스님

가람지기 | 2009.03.25 16:43 | 조회 3632

저희 은사스님께선 제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하늘을 덮고도 남는 복이 있어야 스님이 된다."

안녕하십니까? 나름 복이 많다고 자부하고 사는 대교반 도현입니다.


중학생 때 강원에 있는 사형님을 만나러 왔다가 처음 접하게 된 운문사의 새벽 예불은 정말 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장엄했습니다. 그 모습 하나에 반한 저는 나중에 스님이 되면 꼭 운문사로 오겠다고, 그것이 당연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와서 보니 운문사의 치문반...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몸 받고 부처님 법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걷기 전부터 부처님과 살았고, 이렇게 출가 대장부가 되었으니, 이보다 복 많은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오고부터 그 복이 다 달아나고 하나도 남은 게 없는 것 같기만 했습니다.

도량이 넓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두리번거릴 수도, 시간에 맞춰 뛰어 다닐 수도 없었으니, 은사스님과 사형님 이야기 속의 낭만적이고도 스펙타클한 강원생활의 시작은 사실 '내 앞가림이나 잘 하자.'였습니다.

그 결과 반 스님들 중 한 스님은 치문 봄 방학 때 금당으로 이사를 가고서야 처음보고 "저 스님은 누구예요?" 라고 묻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안되는것 투성이인 치문시절의 생활은 '왜?'라는 사고 회로를 마비시킨 채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 많은 사건 사고 가운데 최고봉은 누가 뭐래도 발우상 치즈 사건일 겁니다.

하채공 소임을 맡아 후원에 들어갔던 어느 날, 그때만 해도 강주스님과 학감스님께 발우찬상을 따로 드렸습니다. 그만큼 하채공에게는 인수인계 사항도 챙겨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인수인계장을 늘 달고 다니며 무사히 소임을 마칠 수 있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 그런데 발우 공양 후 찬상을 내어오는 상반 스님들 표정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곧이어 달려 온 입승스님은 다짜고짜 제게 동방아를 입히더니 저를 데리고 피하당으로 가는 겁니다. "스님, 강주스님 화나셨어요. 마음 단단히 먹어요." 하는 한 마디 말에 피하당 가는 길은 캄캄해졌습니다. 어른 스님 상이라고 김이 나갈 때처럼 치즈를 접시에 받쳐 나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은 없는데, 눈물은 마냥 흐르고, '잘못했습니다.'란 말밖에는 입을 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방학을 맞아 소임을 뽑는데, 전 운문사 소임의 절대원칙인 가위바위보 덕분에 강주스님 시자를 살게 되었습니다. 방학이라 출타하셨지만 당신이 계신 듯 정말 열심히 청소를 했고,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들은 꽃이 시들지 않도록 갖은 애정과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꽃이 강주스님 돌아오시는 날에 맞춰 시들기 시작하더니 죽어버리는 겁니다. 역시나 강주스님 표정은 밝지 않으셨고, 대중회계 스님이 다시 갖다 준 난마저 죽어버렸을 때, 제게는 호환 마마보다도 무서운 것으로 난꽃이 급부상했습니다.


미화반을 거치면서도 꽃 공포증은 여전하지만, 이젠 청도 군수와도 바꾸지 못한다는 화엄반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지나며 바라보니 바쁘고 힘든 학인들의 생활에 손 하나라도 덜 거치길 원하시고, 그 작은 꽃송이의 생명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을 보이셨던 강주스님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뭐 이런 것까지 줄을 맞출까 싶은 것이 많겠지만 '가지런함' 하나만을 배워도 운문사의 생활이 성공적이라고 할 만큼 밀리미터 학장스님의 뜻은 우리들의 기상이고 자랑입니다. 이렇게 많은 강사스님들을 모시고서 스님으로서의 걸음마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하늘을, 아니 우주를 모두 에워싸고도 남는 복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나름 파란만장한 치문을 보낸 열막내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자리를 빌어 이제 막 운문사에 발을 들여놓은 치문반 스님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매사 안 되는 것 투성이에 걱정 듣기가 어렵고 힘들겠지만, 스님들의 복을 믿어보세요. 오늘 조금 힘들어야 내가 내 복을 다 누리며 행복한 수행자로서 살 수 있게끔, 내 복이 더 단단해질 거라고 믿고, 분별을 내려놓고 하심해 봅시다.


대중 스님, 정통 앞 목련을 보셨는지요? 많이 늦어지는 듯 하지만 아직 목련이 느끼는 봄이 오지 않았을 뿐, 볼품없어 보이는 털 갑옷 속에 시리게 흰 꽃을 품고 있을 겁니다. 우리의 불성도 그렇게 화려하게 꽃 피울 날을 그리며, 대중 스님 모두 날마다 새로운 복업 많이많이 심으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sung04_1237967325_87.jpg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