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은-동하 스님

| 2009.05.20 13:09 | 조회 3957

또 다른 수행...

나는 모든 중생의 집이 되리라

그들의 고난을 없애주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구호자가 되리라.

그들의 번뇌로부터 해탈시켜주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안락처가 되리라.

그들이 지혜의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도록 하기 위하여.

화엄경 십회향품의 구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동하입니다.

한 언론의 조사에 의하면 2675명의 호스피스 봉사자 중에서 개신교가 80%를 차지하였으며, 카톨릭이 10,5%, 불교가 8.4%, 원불교가 1.2%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이러니 불교병원에서도 타종교의 봉사자의 도움을 받는 처지라고 합니다. 더 문제는 죽음을 앞둔 불교환자 대다수가 기독교 봉사자의 도움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자원봉사자가 돌보는 불자 환자들의 개종비율에 대해서 질문하자 “열 명중 아홉명의 불교환자가 개종을 권유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한다.”고 답해 선교효과가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방송인 이주일 씨도 임종을 앞두고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환자의 개종에서 끝나지 않고 가족 전체의 개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봉사자는 호스피스 봉사의 원동력은 역시 기독교가 재단병원과 교회, 호스피스 기구, 시설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봉사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베푼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봉사자에게 병원 진료비를 할인해준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이러한 사정을 역으로 생각하면 불교 호스피스의 낙후된 원인을 캐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불교계의 호스피스에 관한 무관심을 들 수 있습니다. 직접 호스피스 기구를 결성해 교회나 기독교 재단, 병원과 연계해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신부나 목사에 비해 스님이나 법사, 불교계 지도자들의 호스피스 활동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점 입니다.

솔직히 스님들은 자기 수행에 급급해서 주의를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설령 관심이 있다하더라도 종단에서의 지원이 부족해 활동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불교병원의 부족으로 불자 자원봉사자의 활동 공간이 적다는 점과 기독교 호스피스가 워낙 활성화되어 불자 자원봉사자가 새롭게 봉사활동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 역시 불교계 호스피스의 활성화를 막는 원인인 것 같습니다.

현재 많은 스님들께서 어렵게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스님의 손길을 바라는 환자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모자랍니다. 이젠 우리스님들께서 나서서 평생 불교를 믿다가 임종 시에 개종하는 우리불자를 보호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리적인 수행에서만 끝나고 자리를 바탕으로 이타행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절, 염불, 진언, 좌선 모두 좋은 수행방법입니다. 하지만 자리와 이타가 함께 공존할 때 완전한 수행임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공덕 중에서도 간병의 공덕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호스피스는 봉사도 아니고 좌선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타행을 할수 있는 좋은 수행 중 하나입니다. 생로병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함께 공존함을 알고 무상함을 느낄 때 몸에서 전율이 느껴지며 세상의 모든 의미가 달라져 보일 것 같습니다.

호스피스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방학을 이용하여 정토마을에서 진행하는 호스피스 교육을 받을 수 도 있고, 이것이 부담이라면 용돈을 조금씩 모아 정토마을에 후원금을 낼 수도 있고 이것도 부담이라면 ,예불시간에 병으로 죽어 가는 이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마음으로의 후원은 어떨까요? 우리는 자비를 실천하는 승으로써 당장눈앞에 임종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불자들에게 기도와 자비로써 극락정토로 안내해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기독교 재단의 치매 센타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저의 눈치를 보시면서 “학생! 학생은 예수쟁이 아니지?” 하시면서 침대 밑에서 손때 묻은 염주를 감춰두고는 목사님이 기도를 하고 가면 몰래 꺼내서 돌리시며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비록 치매 환자여서 가족도 못 알아보지만 목사님의 눈치를 보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찾는 그 할머니를 보면서 저는 절실히 우리 불교신자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는 모든 중생의 목적지가 되리라.

그들이 모든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등불이 되리라.

그들이 청정한 나라에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길잡이가 되리라.

그들을 진리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하여.

요즘 스님들이 구설수에 많이 오르내립니다. 호화, 사치, 권력, 비리... 이건 스님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요즘 네티즌사이에서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스님과 불교계에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받는 인과응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 법장스님께서 법구를 기증하시면서 이런 모든 비난을 잠재우셨습니다. 화엄경 십회향품에 보면 부처님께서도 육신 뿐 아니라 보시 할수 있는 것은 모두 보시 하셨습니다. 법장스님께서는 법구를 기증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시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너무 받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제는 받는 것 보다 베풀어야 될 때인 것 같습니다.

항상 우리는 머리 깎은 수행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호스피스는 봉사가 아닙니다. 호스피스는 또 른 수행의 길입니다.

대중스님! 호스피스 수행 다 같이 한번 실천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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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동하 스님의 차례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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