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고정관념을 넘어 -사집반 덕운스님

가람지기 | 2009.07.16 12:25 | 조회 2861
 

 

‘이젠 절이나 산에가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고나서 우연히 인연이 되어 기도했던 동안이 제 기억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1년쯤 된 어느 저녁공양때 주지스님께 은행갔다 본 이상한 복장의 비구스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스님복장은  했는데 한쪽바지는 둘둘 말아 올려져 한쪽 장단지 다리가 반쯤 보이고 이상한 산발은 너무 더러웠고 행동도 이상했어요. 스님은 아니지만 회색복을 입고있던 제가 다 민망했어요. 저런 스님때문에도 불교가 욕먹는거예요" 라고 떠들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 계시던 주지스님께서 대뜸 하시는말씀 "네가 그 사람을 위하여  옷을 줬는냐?  돈을 줬느냐?  좋은 말을 해 줬느냐? 하다못해 그를 위해 기도해줬느냐? 아무것도 해준것도 없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느냐? "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아득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 부끄러워졌습니다. 상대방을 저의 잣대에 맞추어 판단하여 좋아하고 싫어하고 또 화를 내기도 했던 저의 오래되고 거대한 업에 또 다른 코드가 입력되었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가만히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이런저런 시비가 많이 내재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출가했다가 다시 한바퀴를 돌았던 어리석었던 과거가 떠오릅니다.  출가하기위해  전화번호부 뒤져 처음 펼친 페이지에서 눈에 띄인 절 하나 골라 전화해서 학교졸업식 다음날 바로 출가했지요. 절에서 주지스님의 생활에 대해 제 마음대로 시비를 일으켜 보따리싸서 다시 나왔던 것입니다.

부모없는 3살짜리 아이를 키우는데 해달라는대로 다해주는 스님의 무조건적 사랑이 제 눈에는 너무 버릇없고 호화스럽게 키우는 것 같이 보였고, 시주돈을 너무 쉽게 많이 쇼핑하는것 처럼 보였고, 제가 관심없는 운전면허증이나 꽃꽃이는 배우라 하면서 한창 재밌어하던 음양오행같은 것은 노발대발하고,  서고에 꽂혀있던 그 많은 대장경을 보지 못하게 하는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낮에 몰래 가져다 제방에 갖다놓았다가 저녁에 보았지요. 그러다 주지스님께 걸려서 한여름 뙤약볕이 따가운 낮에 법당에서 땀을 줄줄줄 흘리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1500배의 참회절의 숙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잣대를 들이대어 잘못판단한 것은 모르고 스님이 왜 저래? 하는 등 마음으로 시비를 일으키는 것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얼마나 바꿔야 하는 습이 많은지, 고쳐야 하는 습이 많은지 배워야 하는것이 많은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위안이 된건 부처님께서도 ‘인욕’이란 1가지를 닦기위해 500생을 닦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업이란 습관이 쌓일때는 이슬비에 옷 젖는줄  모르다가 닦으려니 얼마나 엄청난 시간을 닦아야 하는지. 하루아침에, 1년에, 100년에, 이번생에 안바뀔수도 있습니다. 부디 즐거운 마음으로 닦아야 겠습니다. 출가전에 처음 절이란 곳에 갔었는데 무슨기도를 할까하다가 ‘저는 다른 어떤것보다 오직 올바른 스승인연을 바라옵니다.’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다행이 세월이 흐른뒤 존경스러운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중 한 분은 비록 스님은 아니지만 맑은 눈으로 공부하며 가만히 저에게 던졌던 말이 떠오릅니다. ‘마음속 깊이 한단계 한단계 밑으로 내려가 가장 밑바닥 나의 가장 못난 모습과 만난 신은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깊숙하게 있다고 느껴지는 참 나는 왜그리 찾기 어려운 건지요? 그 중 하나는 아마 나 스스로도 파악하기 힘든 고정관념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손해봐서는 안된다. 나는 억울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옳다. 나는 힘들면 안된다. 나는 이것을 할수없다. 저것은 잘못됐다. 나는 모욕당하면 안된다. 저사람은 왜저래? ...등등  나라는 고정관념에 걸려서 시비를 따지느라 아주쉽고 간단한 것도 볼줄 모르고 다른 것들에 속고 가리우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립니다.

 고정관념이 없었더라면 그때 은행에서 만난 비구스님도 순수한 눈으로 그대로 보아넘겨 시비하는 업을 짓지 않고 바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마음쓰는지 바로바로 나올텐데 엉뚱한 것들이 시야를 더욱 가려 시비망상만 했습니다. 한 순간의 생각이 찰나찰나 쌓여 하나의 덮개, 즉 망상덩어리가 생겼는데 그 덮개가 벗겨지지 않는 한 어느 때에 밝음을 보겠습니까. 법성게에 있는 “파식망상 필부득”. 즉 망상을 여의지 않으면 여의보주 깨달음을 얻을수 없다는 것. 뒤집어 보면 구름이 걷히면 시야가 저절로 트이듯 망상만 여의면 밝게 열린다는 뜻입니다. 망상! 망상이란 그저 가벼운 상념같지만 그 가벼운 생각하나가 1개 2개 모이면 나의 현재의식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두껍고 무거운 실제로 있는 듯한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습니다. 한번 고정관념에 빠져 굳어지면 헤어나거나 바꾸기가 힘듭니다.


 마음속 깊이 미세한 분별심의 뿌리를 찾아봅시다. 내가 나의 깊은 의식을 어디까지 파헤칠수 있는지. 자신이 인정하지않아도 눈밝은 도인이 보면 알수있는 잠재의식의 끝과 마지막 고정관념의 뿌리는 어디있는가를 찾아서 한번 여러 수천생이 될지모르는 긴 여행에 동참하지 않으시렵니까.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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