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더불어 살기-사집반 현소스님

가람지기 | 2009.07.16 12:30 | 조회 3238

<더불어 살기>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현소입니다.

산천초목의 그 푸르름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입니다.

산과 들에는 온갖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지며 이 계절이 다 하도록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들은 꽃 봉우리를 먼저 피웠다거나, 꽃의 향기가 특별하다거나, 또는 꽃이 아름답다하여 뽐내거나 시기함이 없습니다.

그저 순리에 따라 피고 지며 어우러져 더불어 살고 있는데 예쁘다, 촌스럽다, 좋다, 싫다 등등 우리가 분별하여 딱지를 붙이고 갈라놓을 뿐입니다.


  예전에 어느 스님께서 ‘더불어 사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어 보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당당하게 서로서로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 이라고 했더니, 그 스님께서는 ‘더 생각해 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난 어느날 기도중에 문득 그 이야기가 다시 떠오르며 그것이 피해 받고 싶지 않다는 저의 이기심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옹졸함과 이기심을 스스로 떠벌이고 다녔던 것이 너무도 부끄러웠지만 저의 부족한 점을 선지식들에게 배워 간다고 생각하며 참회 했던 기억이 법문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1년이 넘은 운문사의 생활을 돌이켜 보는 와중에 다시 떠올랐습니다.

저의 사형님들께서 운문사의 이야기를 하실 때면 이야기의 시작은 늘 같았습니다. ‘저~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으로 한 다양한 사건 사고였는데 주로 농사등 운력중에 있었던 에피소드였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그런 곳에서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곤 했는데 어느 때 부터 인가 단지 부처님의 법을 배우려는 한 가지 뜻으로 그 많은 스님들이 모여 사는 운문사가 소중하고 특별하게 다가왔고 드디어는 제가 운문사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문사의 봄은 너무너무 아름다웠지만 치문의 봄은 치열하도록 고달팠습니다.

몸도 고달팠지만 저를 무엇보다 힘들게 한 것은 다른 스님의 잘못과 실수까지 도매급으로 함께 걱정을 들어야 했을 때였습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의 숱한 걱정과 갈등은 마치 매운 청량고추를 썰다가 눈을 비빈 것처럼 저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고, 세속에서 익혀온 오랜 습관으로 자꾸 삐거덕 거리는 하루하루가 저의 가슴을 퍼렇게 멍들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 보면 그 아픈 상처에서는 나를 다시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배려 하고자하는 새싹이 돋아있었고, 무엇보다도 나로 인하여 대중이 뇌로울 때가 더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서장에 ‘愚人은 除境不亡心하고 智者는 亡心不除境이라 於一切處에 無心則種種差別境界自無矣리라’

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만 제거하려하고 자기 마음은 없애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자기 마음은 비우고 경계를 없애려 하지 않으니 모든 곳에 무심한 즉 가지가지 차별 경계가 자연히 없어지리라 하셨습니다.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서로 달라 많은 사건 사고와 서로간의 질타들이 있었으나, 이 갈등과 대립의 관계가 협력과 우호의 관계로 바꾸어지기 까지는 치문1년이라는 세월이 빵 반죽의 이스트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숙시켜 주었습니다.

백씨측 스님들과 막내측 스님들의 찰떡궁합 그리고 중씨측 스님들의 재치 있는 유머는 반 분위기를 한층 조화롭게 하는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제가 반 스님들을 만나 더불어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 1년이었고 이제는 사집반이 되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커가는 고추와 상추, 시금치, 그리고 오이, 호박 그 틈에서 갖가지 벌레 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물을 줄 때면 만세를 부르는 야채들의 아우성에 제 마음이 한껏 푸르고 쌩쌩해지는 것은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이치인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농작물을 수확하고자 하는 이기심으로 살충제를 사용했을 때 벌레들은 물론 흙과 더불어 인간들까지도 해를 입어서 결국에는 너와 내가 함께 고통을 감수해야하지만, 배추씨를 심을 때 다라니를 쳤던 그 마음과, 다 자란 호박 오이를 거둘 때 대중 스님이 이 음식을 드시고 모두 건강하여 지이다 하고 기도 하는 그 마음과, 이들을 수확하게 해준 땅에 대한 감사의 그 마음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삶을 터득하게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속에서는 자아를 가진 개인이 기본이고 개인이 중심이 되어 사회가 성립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출가승은 승단이라는 틀 속에서 나보다는 먼저 대중의 화합을 우선시 합니다.

내 생각이 옳더라도 다수와 전체의견에 수순하고, 도반스님의 잘못에 기꺼이 함께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 할 수 있듯이 이와 같은 한마음 공동체 의식은 보다 큰 원력으로 보다 밝게 이 세상에 회향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으로 어리석음의 길을 가던 제가 서장에서 문득 그 나와 마주 칠 때면 한없는 부끄러움을 부처님께 참회하며 새롭게 발심을 하게 됩니다.


서장에 ‘生處는 已熟하고 熟處는 已生矣러니 切切記取어다’


선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기면서 너와 나의 차별이 없이 모두가 부처님으로 보이는 그날 까지 대혜스님의 말씀을 네비게이션으로 삼아서 불도를 이루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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