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내일은 없다-치문반 정선 스님

가람지기 | 2009.07.17 11:11 | 조회 3331
 


 

  이른 새벽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어쩌면 이렇게 잠시도 짬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치문 첫 철 운문사 봄 풍경을 느껴 볼 여유도 없이 옆도 뒤도 돌아 볼 겨를도 없고 내 앞가림조차 못하던 때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옆에 도반이 힘들어 하는지 아파하는지 알 수 없고, 알고 보면 다 힘들었을 텐데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이 치문 첫 철을 보내고 지금은 여름철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코앞에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정선입니다. 저는 오늘 <내일은 없다> 라는 제목을 가지고 올라 왔습니다. 늦은 나이에 출가해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이렇게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머리 깎은 일 밖에 없는 것 같은데, 하루가 그렇게 아깝고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제 나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산들은 푸르름으로 물들어 아름다운 계절이 되었습니다. 저의 수행 또한  이렇게 푸르러 가고픈 마음에 대중스님과 같이 정진하는 수행자가 되기를 바라며 여기에 섰습니다.

출가하고 나서 저는 지나가는 세월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하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외워도 외워도 외워지지 않는 염불과 쉽게 손에 붙지 않는 목탁과, 어렵기만 한 어른스님 시봉, 그리고 이리저리 살펴야 할 절집일은 왜 이렇게 많고 까다로운지...... 날이 갈수록 버거워지는 마음에 내가 왜 이제 출가해서 이런 괴로움을 받나 하고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가 사문이 되는 것을 너무 단순하고 쉽게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정말 바닥까지 가버린 마음을 일으킨 것은 發心修行章을 배울 때였습니다.

그 환희심이란 정말이지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내가 잘하려고 하는 욕심에서 비옷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아시고 은사 스님께서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생에 뭔가를 얻어 가지려는 내 욕심!!

수행자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조바심은 절대 사절이라는 것을 원효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천년을 거슬러 오셔서 조바심 내는 이 답답한 중생을 위해

「雖有才知나 居邑家者는 諸佛이 是人生悲憂心하고 設無道行이나 住山室者는 衆生이 是人生觀喜心하느니라」

<비록 재주와 지혜가 있더라도 마을 집에 사는 이는 부처님들께서 사람에게 가여운 마음을 내시고, 설사 도행이 없더라도 산방에 머문자는 모든 중생이 환희심 내느니라>

 나이가 많다고 또 늦게 출가했다는 그래서 시간이 없어 모든 것을 지금 빨리하려는 저의 욕심을......그러나 출가한 것만으로도 늦은 것은 아니라는 원효스님의 격려의 말씀에 내 마음 곳의 가득한 욕심을 비워냅니다.

 걸어온 길 뒤 돌아 보지 말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앞으로 내딛는 한발 한발 그 소중한 발걸음 부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을 지나도 회복하지 못한다고 했으니 어찌 마음에 새기어 두지 않을 수 있으며, 이렇게 출가를 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대중스님들께서는 내일이 있습니까?  저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오늘 대중스님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운문사의 새벽 예불부터 예불모시는 자리에는 불보살님이 계시고, 공양을 할 때에는 밥과 반찬이 있을 뿐이고, 공부하는 시간에는 조사스님들의 말씀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길에 또한 이끌어 주시는 선지식이 있고 함께 하는 도반스님들이 있기에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고 힘이 들 때면 사대는 홀연히 흩어져 오래 머물도록 보존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처음 발심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한 시간을 그냥 헛되이 보내면 후에 십년을 고생한다는 어른 스님의 말씀에 다시  한 번 이 시간 시간을 소중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힘이 뜰고 지칠때는

「拜膝이 如氷이라도 無戀火心하며 餓腸이 如切이라도 無求食念이니라」

<절하는 무릎이 시리더라도 불을 구하는 생각을 내지 말라 하셨고, 배가 고파도 음식을 구하는 생각을 내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공부하라는 말씀을 두고 해태에 빠져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몸은 저보고 좀 쉬자고 그럽니다. 사실 그러고 싶은 게 솔직한 제 맘입니다. 그럴 땐 제 머리를 만져보며 다시금 원효스님의 말씀을 되새겨 해태의 자리를 차고 일어납니다.


 어느새 백년의 반이 가버린 나이......그렇지만 이제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상하고 꿈 같은 인생, 일어나는 한 생각 따라 갈팡질팡 하지 말고 이 인생 유전을 道行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지금 분명히 살지 않으면 다음 시간은 없습니다. 이목소의 물은 여전히 흐릅니다. 저도 이렇게 꾸밈없이 현재에 충실하며 흘러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수행의 길도 어떻게든 흔들리지 않고 흘러가는 물처럼 끊임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수행정진 해야 합니다.


 물은 흘러 내려오다 웅덩이가 있으면 물이 다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흘러  가고, 가다가 바위로 막혀 있으면 돌아서 가기도 하며, 흙탕물이 흘러들어 오면 같이 흘러 넓은 바다도 갑니다. 조급 힘이 들어도 그대로 계속해야 합니다. 차츰 공부가 익어 우리의 집착이 떨어져 나가고 망상이 떨어져 나가면, 현재의 모습 이대로가 진리라는 것을 체험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급하고 급하지만 욕심을 내서 급한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 급한 것입니다. 저처럼 욕심을 내어 다 해버리고 무엇인가 당장 얻으려는 그 마음을 버리고, 그냥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행인으로서 사는 것입니다.  일상의 소소한 고민과 고통에 흔들리지 말고, 대범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공부해야 합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힘들고 힘든 수행자의 길이지만 그 힘듬이 힘들다는 생각조차 없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만공선사께서는 "공부에는 도량ㆍ도사ㆍ도반 세 가지 갖춤이 있어야 성취가 있다" 하였습니다. 운문사 훌륭한 도량에서 수행에 더욱더 성취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두 손 모아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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