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화엄반 모인 스님

가람지기 | 2009.10.05 10:15 | 조회 3051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모인입니다.

마가스님 특강 때, 저는 저 뒤쪽 찰중 자리에 앉아 있다가 치문반 스님들과 한 조를 이루었습니다. 자기 자랑을 다섯 가지씩 하라고 하길래, 전 “6개월만 더 살면 졸업한다.”는 자랑을 했습니다. 같은 조였던 치문반 스님들이 부러워한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치문 때, 그렇게나 까마득하기만 했던 졸업이라는 단어를 이제는 실질적으로 입에 올리면서, 지난 4년의 시간이 절대로 짧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리 길지도 않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강원에 오기 전, 은사스님과 둘이서만 살았습니다. 출가를 했다고는 하지만 철없고 버릇없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인지, 은사스님은 제게 겁을 많이 주셨습니다. 당신이 직접 걱정을 하시기보다는 “대중에서 살아봐야 철이 들지.”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강원에 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고 보니, 층층시하 시집살이와 다름없다는 풍문 속의 강원은 제겐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입방 시험을 치고 입학할 날을 받아놨는데, 그동안은 귓등으로 듣던 은사스님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선잠을 자기 일쑤였습니다.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면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운다고 합니다. 입방하던 때의 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출가라는 커다란 결단을 내려놓고도 은사스님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금당에서의 첫 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긴장할 여유도 없는 운문사에서의 첫 철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간절하게 달력에 빨간 가위표를 해 가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방학이 끝나도 운문사에 돌아오지 않으리... 하고 혼자서 마음을 먹었을까요.

그런데 방학을 앞두고 종강을 하던 날, 강사스님께서 아주 심각한 표정과 말투로 “모인스님, 개학하고 꼭 다시 만나요.”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학인들을 많이 봐 오신 입장에서 제 생각을 읽으신 듯 했습니다.

그 한 마디 말씀이 낳은 파장은 컸습니다. 묵언을 해야 하는 치문반인데, 소문은 어쩜 그렇게 빨리도 퍼지는지, 눈 마주치고 얼굴 마주치는 스님들마다 방학 끝나면 꼭 돌아와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두는 겁니다. 처음에는 귀찮다는 생각도 했지만, 평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스님들조차 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돌아오겠다는 제 말에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힘든 치문을 보내고 사집을 거쳐 사교가 되고, 어느덧 아무렇지 않게 졸업을 이야기하는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그 시간 속에서 생각지 못한 캐릭터를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에피소드들을 추억으로 남겼습니다. 나로선 살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소임들을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인생이라는 커다란 도화지를 펼쳐놓고 보면 아주 작은 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마다의 도화지에 각각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야하는 것이 인생인데, 우리가 한 순간 만난 사람과 겪은 사건은 그림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작은 점에 지나지 않을 거란 생각 말입니다.

작은 점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없고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것이니, 함부로 대하거나 쉽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힘들고 애타는 만큼 더 멋진 그림이 그려질 거라고 우리들 스스로를 믿고, 다시 한 번 기운을 차려봐야 하지 않을까요.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새삼 49명의 도반들이 제게 얼마나 소중하고 힘이 되어주었는지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지금 제게 당해있는 화엄경이라는 큰 법문 가운데,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음을 없애 해탈하려고 한다면, 오로지 굳은 결심으로 용맹스럽게 정진해야 한다. 젖은 나무는 센 불로 태워야 하듯이 게으른 사람은 오로지 굳은 결심으로 용맹스럽게 정진해야 한다.”

대중스님. 타인과 상황을 탓하며 밝고 밝은 스스로의 불성 앞에서 게으른 생각을 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닦아가는 수행의 열기가 이 더위를 이기는 그 날을 그려봅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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