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주인의식과 부처의 행- 능현스님-

가람지기 | 2008.07.20 10:54 | 조회 3180

주인의식과 부처의 행

안녕하십니까?

무더운 날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린다면 사집반 스님들에게는 특별한 휴식이 될 텐데, 양주머니에는 장갑과 토시가 넣어져 있고 여차하면 모자만 쓰고 나갈 수 있는 특공대 원두반의 능현입니다.

心隨萬境轉 轉處悉能幽 隨流認得性 無喜亦無優

심수만경전 마음 마음, 이 마음이라는 이 마음이여 만가지 경계에 부딪치면서 만가지 생각을 일으키는구나

전처실능유 부딪치는 사물마다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자체 그 속에서 부처의 성품을 쓸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수류인득성 사람 몸 받기 어려운 이 사바세계에 사람 몸 받았고 불법 만나기 어려운데 이 불법을 만났고, 그 가운데 정법을 들었으니 이 삶 이대로가 부처 행을 할 수 있는 원을 세워서 부처 성품을 쓰라는 겁니다.

무희역무우 들의 삶이 기쁘다고 집착해서 병이되고, 슬프다고 고통스러워 병이 되는 그런 일들은 없을 것이다.

이 게송은 부처님의 법을 이어 받은 제22조의 마노라 존자께서 제자 학륵나 존자를 따라 다녔던 500마리의 학을 제도하기 위해 설하셨는데 학들이 이 게송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날아갔다고 합니다.

우리의 본래 성품은 포도씨와 같습니다. 포도씨를 보면 포도가 들어있습니까? 잎사귀를 볼 수 있습니까?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포도씨 안에는 반드시 가지와 잎사귀와 꽃과 포도 열매가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포도씨 안에는 사람으로 말하면, 본래 생명의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흙에 들어가서 수분과 풍화작용과 인연에 조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본래 가지고 있는 나의 원력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데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의 성품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삶에 지극한 정성을 다 하여서 노력을 하고 믿고 한다면 마치 포도속에 이미 가지와 잎사귀와 꽃과 포도가 다 들어 있듯 우리도 금생에 그대로 부처의 열반안락을 볼 수 있는 성품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隨 處 作 主 入 處 皆 眞 이라

가는 곳마다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참다운 자기 부처를 만나라.

다시 말하자면 어디에 있든지 자기 있는 곳에서 참된 주인이 되라는 임제선사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임제스님은(787-867) 임제종의 개창자이며, 속가의 성은 邢(형)씨이고 황벽 희운의 법을 이었습니다. 현실을 떠나 따로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며,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유로운 주체임과 동시에 평소 마음이 불성의 발현인 참된 부처, 즉 무위진인(無位眞人)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불법 문중에 들어온 것도 제 생애의 다행한 만남이라고 생각하며 이 기회를 꼭 다잡아서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열심히 정진하고 싶습니다. 이 주인의식과 부처의 행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도 사실은 어디에서나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을 느끼고 부터였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마음이 들까요?

중은 어느 절을 가나 다 자기집 같이 여긴다고들 하지만 저는 우리 절에서 조차도 왜인지 이방인 같다는 생각에 슬슬 고민 아닌 고민이 되어서 가만히 觀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주인 의식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서장을 배우면서 임제 선사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어 이 분의 사상을 공부한 그것을 실천하는 뒷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심시불, 평상심시도, 황금십만냥 그리고 임제4할중 “금강왕보검” 처럼 예리하게 번뇌를 끊어주며 “금모사자”와 같이 위엄 있게 앉아서 납자들의 기량을 살피고 그에 응해 할을 해주시며, “탐간형초”처럼 물고기가 숨어 있는 그늘을 찾아 이리저리 긴 장대로 탐색하듯 배움을 구하러 온 납자들을 이리저리 탐색하여 근기에 알맞은 방편으로 예리하고 날카롭게 가르쳐 주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그런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수행자가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짐을 현실속에서 성취하려면 무엇보다도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고 아껴쓸 줄 알아야 하며 머무르는 그 자리에서 주인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된 것이지요. 오늘을 살고 나면 내일이 또 나에게 주어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갈지. 시한부 인생이 서럽다고 하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시한부 인생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한 번 오면 한 번 가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니 살아 있는 동안 이 시간에 대해 최선의 예를 다하여 열정적인 삶을 이어 갈 때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대혜스님께서도 사대부들을 가르치시며 염염에 잡들어서 시간을 함부로 보내지 않기를 고구정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생각하는 이 순간이 성품을 깨쳐 부처를 이루기에 늦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처 성품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남에게 사랑도 베풀 줄 알고, 항상 내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인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스님들도 운문사의 주인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과 서로의 관계속에서 눈이 가고 손이 가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지나가는 객으로 생각하면 하나도 걸리는 것이 없는데, 주인의식을 갖는다면 도량내의 풀 한 포기 스스로 뽑을 수 있고, 정랑에서 슬리퍼를 정리할 수 있고, 수곽 에서는 손을 씻고 주변의 남은 흙을 씻어 내릴 수 있을 때 이것이 부처의 행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운문사의 하루 일과는 새벽3시에 도량석이 올라가면서 황금 같은 하루 일과가 펼쳐지게 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힘들고 지친 하루가 될 수도 있지만 임제스님의 말씀대로 하루에 황금 십만 냥을 쓰는 부처의 행을 지으며 시간 시간에, 그 시간들을 부처의 마음과 부처의 행으로 잡들이며 살아갈 때 우리 학인스님들은 이 운문사에서의 사년을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의 발원은 부처님과 임제스님을 제 삶속으로 초대하고 싶은 것입니다

부처님처럼 그렇게 살고 싶고, 임제스님의 사상을 제 삶속에서 실천하여 내가 임제가 되고, 임제가 내가 되는 그런 삶을 펼친다면 이 한생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리하여 최선을 다하는 참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저와 함께 그런 삶을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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