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사천왕의 역할 -혜오스님-

가람지기 | 2008.07.21 10:53 | 조회 3500

사천왕의 역할

저는 오늘 사찰의 문에 들어서면 떡 버티고 있는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긴 사천왕의 역할과 중생을 위한 마음 씀씀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천왕의 무서운 형상 때문에 절에 가기가 무섭다고들 하지만 사천왕의 역할과 중생을 위한 마음 씀씀이를 알고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신이 없을 것입니다.

어느 사찰이든 거의 사천왕문이 있고 그 안에는 사천왕이 사찰에 들어오는 불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운문사에도 사천왕이 작압전 안에 모셔져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화강암에 새겨진 사천왕상은 나무가 아닌 석주에 조각한 희귀한 보물 318호 문화재입니다.

사천왕은 인도 고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으로 불교에 흡수되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護法)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고대 인도 초기에는 귀족적인 상으로 표현되었다가 중앙아시아를 거치는 동안 갑옷을 입은 무장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얼굴표정도 분노를 띠었는데 그것이 신라에 이르러서 무섭지 않은 소박한 표정으로 안착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항상 부처님과 함께 하여온 인간의 바로 위 하늘의 신들. 보통 사천왕은 사대천왕(四大天王), 사천(四天), 호세사왕(護世四王)이라고도 하며, 욕계 6천의 첫 하늘 인 사천(四天)의 천주(天主)로서 사람들이 사는 곳 4대륙 중 남염부제 수미산의 중간에 머무는 세상을 지키는 하늘인데 그 하늘 바로 위 하늘 수미산 정상에 있는 제석천이 주재하는 도리천의 명을 받아 사천하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동작을 보고하는 등 제석천을 도와 불법을 수호하였습니다.

먼저 사천왕이 머무는 문의 이름이 사찰의 특성에 따라 약간씩 다른 이름으로 나타냅니다.

대다수가 천왕문으로 부르지만 승군이 머물렀던 주둔지에는 사찰과 백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옹호문(擁護門), 인간들을 잘 살피겠다는 뜻의 회전문(回轉門),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겠다는 뜻의 법왕문(法王門)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문안의 사천왕의 명칭과 역할은 같습니다.

먼저 들어가는 방향으로 오른쪽 윗부분이 동승신주로 지국천왕이 있습니다. 하늘이 보관인 천관을 쓰고 흰 수염을 늘여뜨리고 인자하게 웃는 동방을 맡은 지국천왕은 부처님께서 “나라는 백성이 안락하고 부강하면 스스로 지켜지는 법이며 무기로 나라를 지키고자 한다면 끝내 그 나라는 멸망할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부처님의 나라 다스리는 법을 나타내는 지국천왕은 국토를 수호하고 백성을 보살피는 것이 그 주된 임무라 할 수 있습니다. 손에 비파를 들고 항상 음악을 연주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니 나라는 자연적으로 부강해지고 안락하여 스스로 나라가 지켜지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른쪽 아랫부분이 남섬부주의 증장천왕이 있는데, 남방을 맡은 증장천왕은 불자들의 지혜와 복덕을 늘려주고 이익을 증장시켜주는 것이 주된 임무입니다. 그래서 젊은 모습으로 힘있게 칼을 잡고 있는 모습이며 인간의 번뇌를 끊어버리면 바로 지혜가 나오므로 번뇌를 끊은 취모검을 들고 인간의 지혜와 복덕을 늘려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천왕문 왼쪽 아랫부분이 서우화주로 광목천왕이 있습니다. 서방을 맡은 광목천왕은 말 그대로 부릅뜬 눈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고 나쁜 말을 굴복시키는 인간의 선과 악을 살펴 그것에 상응하는 상과 벌을 내리는 듯 손에 용과 여의주를 잡고 있어 조화를 부립니다.

천왕문 왼쪽 윗부분이 북구로주로 북방을 맡은 다문천왕이 있습니다. 다문(多聞) 또는 보문(普門)의 뜻으로 부처님의 도량을 수호하면서 불법을 듣는다는 뜻에서 다문천왕이라 하는데 손에는 부처님을 상징하는 보탑(寶塔)을 들고 있고 부처님 말씀을 많이 듣고 인간에게 많이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문천왕의 경우 통일신라시대부터 거의 탑을 지니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어 사천왕의 방향 및 이름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사천왕의 발 밑에는 ‘생령좌’라는 귀신의 모습을 한 가상 생물이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악을 나타낸 형상입니다. 사천왕이 생령좌를 밟고 있는 것은 착한 마음을 보호하고 악한 마음을 없애버린다는 권선징악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다음 생에 혹시 사천왕의 발 밑에 깔리는 고통을 받지나 않을까? 자신의 마음을 이곳에 견주어 보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경사 생령좌를 보면 이 생령좌는 남성으로 자기의 잘못을 감내하며 고통을 참고 있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으니 벌을 달게 받겠다.”는 듯이 꼭 다문 입술과 바로 뜬 두 눈, 고개를 든 얼굴에 역력합니다. 그러나 선운사 여자 생령좌는 사천왕의 다리에 눌려 있으면서도 전혀 반성의 빛이 보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왜 죄는 나만 지었는가. 상대 때문에 지었지.” 하는 원망의 눈초리가 역력하고 입은 씰룩거리는게 사천왕에 눌려 고통스럽기 보다는 아직 억울하다는 듯 쪽진 얼굴을 돌려 원망을 표출하는 모습에서 오뉴월 서리발이 내려지듯 한기를 느끼게 하는데 잘못을 하고도 감히 대드는 해학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보림사 생령좌는 사천왕의 다리를 들고 있는 것이 재미난 듯 즐거워하고 삐죽 나온 송곳니에 무쇠팔 근육을 자랑하며 가볍게 사천왕의 다리를 들어올린 모습입니다.

별의 별 형상의 생령좌 보다도 더 별나고 특별한 도반들과 함께 부처님 손바닥 위 손오공같이 오늘도 운문사에서 여름철 종두대장으로 땀 흘리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저는

“모래알속에서 세계를, 들꽃 속에서 하늘을

손바닥 안에서 무한을, 머리엔 지혜가

가슴엔 사랑이, 얼굴엔 미소가

그리고 항상 손에는 일이 있으라”

는 학장스님의 말씀을 새기며 가장 운문인 답게 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천왕문은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으로 이 문밖은 하늘아래 천하(天下)가 되고 문안은 하늘 위 천상(天上)이 되는 것입니다.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한 천하는 어떠한 힘으로도 천상을 더럽힐 수 없듯이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 여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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