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환희지 도량 운문사-사교반 무처스님

가람지기 | 2008.07.21 13:52 | 조회 3322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무처입니다.

...이런 풍경을 한번 그려보십시오. 비 개인 맑은 여름날 아침입니다. 하늘은 높고 푸른데, 목화솜같이 하얀 구름이 가끔 지나갑니다. 저기 북대암 아래로는 연기같은구름이 피어오르고 마지막 빗방울은 처마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새들의 지저귐이 한창인 아침, 지붕의 기와 하나하나가 씻은 듯 말갛게 보입니다. 마치 공기마저 푸른 여름 빛깔을 머금은 듯 한 아침공기를 종소리가 가로지릅니다. 가사장삼을 모두 수한 스님들이 이내 한 공간에 조용히 모여들어 목탁소리에 맞춰 예를 올립니다.


상강례. 부처님과 역대 조사스님들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 앞서 불보살님들과 여러 성인들께 자비와 가피 내려주시길 발원하고 고하는 우리들의 일과 입니다.

사실상, 설겆이나 각 구역 청소, 때로 도량 대청소운력을 하다보면 허겁지겁 뛰어가 상강례 준비할 일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눈앞에 쑥쑥 자란 풀을 두고 돌아서자면 짧은 시간을 쪼개가며 구성해 둔 일과표가 원망스럽기도 하죠. 하지만 숨을 가다듬고 가사장삼을 수 한 채 청풍료에 앉아 먼저 떠올린 풍경을 대하면 마음은 새로운 신심으로 가득 찹니다. 회성당과 설현당, 관음전과 피하당, 만세루까지 이어지는 기와지붕의 날아가듯 한 추녀 끝이며 하늘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화폭은 직접 보지 않은 사람에겐 아무리 설명을 해도 다 옮길 수 없을 아름다움입니다.


그 고요한 공기를 꿰뚫는 우리 대중스님들의 염불소리는 어떻습니까. 텅 빈 허공 한 가운데, 오직 한 줄기 향으로 공양을 올리고서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님의 명호를 외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말입니다.


지난 봄, 식차마나니 수계 산림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수업을 앞두고 상강례를 올려야 하는데 운문사스님들은 염불성이 좀 다르니 어느 강원 스님에게 집전을 하라는 습의사스님들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 강원 스님들, 예불 대 참회문을 할 때도 염불성이 조금 다르길래 그런가보다 하고 "심향일주용허공" 하는 익숙한 소리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왠걸? "일심봉청" 하는 짧은 상강례 염불이 울렸습니다. 대중을 따라서 절은 했지만 그날따라 청풍료 문들이 만들어내는 운문사표 풍경과 우리식 상강례가 간절하게 그리웠습니다. 불과 10여분 동안 이루어지는 의식이지만 그 안에 깃든 우리의 신심과 열정. 상강례 하나만으로도 우리를 결속시키는 힘...이는 저에게는 운문사의 아름다운 도량입니다.


사실, 이 운문사라는 도량이 베풀어주는 환희로움을 처음부터 맛보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높낮이 없이 넓게만 퍽 퍼진 도량이 처음엔 그저 휑둥그레 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요. 치문시절동안은 종각 밖을 바라보다 간혹 지나가는 관광버스를 보면 있는 그대로 은근슬쩍 올라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치문이라는 과정이 주는 극도의 긴장이 제 시야의 폭을 좁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이 도량의 아름다운 풍경은 긴장과 이완의 연속인 대중생활의 틈을 타 조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예를 들어 사리암 기도소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긴 포행길 또한 이곳의 특권이며 밭을 가꾸어 수확하는 동안의 시원하게 탁 트인 드넓은 밭과 주변을 감싸는 산세가 마치 때가 끼지않은 이상의 나라 동화속 풍경입니다.


이러한 환희지 도량은 신심의 밭이며 이 불법문중에 들어서길 한치의 의심도 없는 믿음의 불국토가 되어줍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곳 자체가 더없는 스승이며 도반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압축해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저에게는 상강례 시간에 청풍료 문틀이라는 액자 속 풍경입니다.


특히, 그냥 무의미하게 지나칠 수 있는 10분이라는 이 짧은 의식을 이용해서 대중생활속의 보석과도 같은 개인적 사유시간을 즐감해 봄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활기찬 수행생활을 겸할 수 있다면 심신이 건강한 나날에 조금은 보탬이 있지 않나 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내일 아침 상강례 자리에선 누구보다 우렁차게 불보살님의 명호를 불러 보십시오. 청명한 여름공기 안으로 퍼져나가는 우리들의 소리가 관음전 관세음보살님께, 더 멀리 대웅전 부처님께 까지 들리도록 큰 소리로 염불해 보십시오. 그 소리에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고마운 도반들과 함께 존경스러운 어른 스님들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이 환희로움을 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일체 모든 것은 다 우리네 마음에 달려있고 그러한 환희로움으로 이 무더위를 지혜롭게 이겨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 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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