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죽음에 대한 단상 - 상덕스님-

가람지기 | 2008.09.16 16:16 | 조회 3005

죽음에 대한 短想

해맑은 가을 하늘과 새벽이슬을 맞으며 자라는, 어린 배추를 바라보면 마냥 행복한 사집반 상덕입니다.

머리를 깍고 수행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일 보다 보람되며 특히 부처님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더욱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차례법문에 대해 고민하다, 제가 가장 관심있는 부분을 법문 주제로 정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에 대한 단상입니다.

출가전 노인병동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生을 마감하는 노인들을 보다보니, 환자의 상태만 봐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노보살님이 생각납니다.

그 분은 늘 웃으며 자주 오지 않는 딸을 주말이 되면, 승강기 앞에서󰡐오늘은 오겠지󰡑하며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답니다.

한달만에 찾아온 딸에게 아기처럼"얘야! 나 점심 좀 먹여주고 가"라고 하자 교사인 딸은 "바빠 죽겠는데 시간이 어디 있어" 라고 소리치며 가버렸습니다. 그 냉정한 말을 남기고 떠난지 10분 뒤에, 할머니는 점심을 드시다 목이 메어 음식이 걸려서 돌아가셨습니다.

딸을 위해 희생하고 한 평생을 살으신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준 상처이며, 먼 훗날 자신이 그대로 받을 과보라는 것을 그 딸은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바빠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미워 죽겠다󰡑라는 말로 하루에도 몇 번씩 죽는 裟婆世界에 살고 있습니다. 사바란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감인(堪忍)의 뜻이랍니다.

저와 대중스님이 이 사바세계에 온 것도, 그럴만한 인연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대중스님이 과거에 지어놓은 업보를 달게 받되, 미래에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現在의 因을 새롭게 지어 나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람의 수명은 체온과 의식이 이 몸을 떠나 버리면, 썩은 나무토막 보다도 쓸모없는 흉물이 되어, 누구나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물건이 되는것이지요.

죽음에도 二種死, 三種死, 四種死, 九種橫死가 있는데 이 중에서 삼종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壽盡死 즉 타고난 수명대로 다 살고가는 것을 말하며

둘째: 福盡死, 태어날 때 갖고 나온 복을 다 쓰고 가는 것을 말하며,

셋째: 非時死: 자살, 타살등으로 타고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가는 非命橫死를 말하는 것입니다.

5년전 어느 겨울 밤, 한 손에 108염주를 돌리며 관세음보살님을 주력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곁에는 할머니와 조카가 함께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낯선 두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한사람은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또 한명은 제 양쪽 어깨를 눌렸습니다. 순간 몸은 물론이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고,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조카의 어깨를 또 누르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눈물로 관세음보살님을 찾았습니다. 그때 손가락이 움직이자 온 팔에 힘을 주어, 108염주로 그 남자를 향하여 휘두르자 뒤로 넘어졌습니다.

서 있는 남자가 고개를 흔들며 "안되겠다. 그만가자"고 했고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때 그 저승사자를 따라 갔다면, 오늘 대중스님과 이렇게 마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안 따라 가기를 참 잘 한 것 같습니다.

대중스님이 알 듯이, 한번 태어나면 죽기 마련입니다. 죽음의 보편성은 인정하지만, 저처럼 자신의 죽음만은 회피 또는 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죽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육체를 떠나면 의식이 아홉 배나 밝아져, 참된 가르침을 한번 듣기만 해도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망자를 위한 念佛을 아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다섯종류의 안색으로 변하는데 그것으로도 간 곳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얼굴이 검은색(黑色)으로 변하면 地獄相이고,

두 번째: 푸른색(靑色)으로 변하면 畜生相이고,

세 번째: 누런색으로 변하면 餓鬼相이고,

네 번째: 평상시의 안색이면 人相이고,

다섯 번째: 화사한 선화색(鮮花色)으로 변하면 天相 즉 하늘에 태어난다 고 합니다. 대중스님은 어디에 태어나고 싶으십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을 등지고 살면서, 수행하거나 깨달음을 추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경험 하면서 올바른 견해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증득하는데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만나기 어려운 불법 만났으니, 이 길에서 대도를 성취하여야겠습니다.

끝으로 부설거사 임종게를 들려 드리며 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처자, 권속 즐비하고 부귀영화 태산 같아도

임종에 임해서는 외로운 혼만이 쓸쓸히 떠나가니

참으로 허망하구나.

풀 끝에 맺힌 이슬 같고

바람 앞에 등불 같아서

인생이 참으로 무상하구나.

이 가냘프고 실날같은 목숨을

무슨 질긴 쇠줄이나 되는 것처럼

인생무상 허송세월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

어디로 가야할꼬.

대중스님!

서투른 법문 법문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가을 더욱더 如如精進 하십시오.




sung04_1221549372_50.jpg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