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진정한 그림자 -등광스님-

가람지기 | 2008.09.16 16:26 | 조회 3224

한 국경군인아 묻습니다.

“감히 여쭈오니 그대는 누구시옵니까?”

라마가 대답합니다.

“보시다시피 미천한 비구일 뿐이요”

다시 국경군인이 한 번 더 묻습니다.

“당신이 부처시옵니까?”

라마가 합장을 하며 대답합니다.

“나는 그림자일 뿐이요, 물 위에 비친 달처럼 나를 통해 그대들 자신의 그림자를 보기 원할뿐...”

안녕하십니까? 진정한 그림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수행이라는 길위에서 허덕이며 뜀박질을 하고 있는 사교반 등광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화의 장면이 어디에 나왔던 장면인지 여러분은 혹시 아십니까?

바로 스님들이라면 한번쯤은 다들 보셨을 법한 영화 “쿤둔”의 한 장면인, 달라이 라마가 자국인 티벳을 떠나 인도로 망명하기 위해 국경을 넘기 직전 한 국경군인과 나눈 대화의 한 장면입니다.

그림자라....

여러분은 이 짧은 한 대화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저는 이 부분에 이르렀을 때 가슴한곳이 먹먹해져 옴을 느끼며 가슴을 부여잡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내가 수행자임을.....

그리고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 길에 올라서서, 부처님의 법을 잇는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우러름과 기대와 발원과 시주를 받고 있는지.....

저의 출가는 眞발심을 하여 출가를 한 많은 여느 스님들의 경우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였습니다.

결혼 전 부처님의 법을 알았더라면 스님이 되셨을 거라고 늘 말씀하시던 부모님께서 자신의 딸이라도 부처님의 제자라는 대자유인의 길을 걷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과 바램으로 저를 이 불문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무엇이든지 금방 익숙해지면 실증을 잘 내는 제 성격이 이곳 불문에 들어와서도 어김없이 나타났습니다. 출가하여 3개월가량이 지나자 어리둥절하기만 했던 절집 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지면서 흔히 말하는 망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듣고 배웠던 부처님제자의 삶과 현실의 삶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아직은 어린나이라 조금이나마 남아있었던 세속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저의 마음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되어 짓는 죄는 더 크다고 했는데 차라리 속가로 돌아가서 이곳에서 배운데로만 살면 오히려 복을 쌓고 사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참 많이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행자생활을 하던 곳으로 허리가 한웅큼은 구부러진, 그래서 걸음조차 버거워 보이는 한 늙은 노보살님이 와서는 한뭉큼의 노란 쌀자루를 내려놓으며 숨을 고르는 것이였습니다. 의아해하며 자루를 들여다 보니 산에서 막 뜯어온 나물이 자루에 반쯤 담겨져 있었습니다.

공부하시는 스님들께 다른 건 해드릴 건 없고 자신이 하루종인 산에서 헤메이며 뜯어온 나물이라도 드시고 힘내실 수 있도록, 드릴게 이것밖에는 없다고 허리를 조아리시며 부탁을 하시는 모습에 순간 부처님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등공양을 올렸던 늙은빈녀난타의 “貧者一燈”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당신의 손자뻘보다 훨씬은 더 어릴 저에게 부처님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허리를 조아리며 부탁을 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갑자기 답답해져 왔습니다.

합장을 하시며 말하시던, 나물을 뜯느라 손이 다 헤어지고 흙투성이인 그 노보살님의 두 손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지금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구나.....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부모님의 바램이였다고는 하나 제가 진정으로 원치 않았다면 이 불문에 들어오지 않았을텐데, 전 그때까지도 부모님의 바램으로 출가를 했다는 핑계를 가지고 도망아닌 도망만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최고의 길인 이 대자유인의 길에서 진정으로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그림자가 되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그런 망상의 시간을 무사히 지나 전 지금 이곳 운문사에 와 있습니다.

비록 아직은 서툴고 아직은 세속의 때가 다 벗겨지지 않아 흔들리고 깨지고 아파하고 구르며 힘들어 할 때고 있지만 이렇게 시간이 조금씩 자나다 보면 저의 몸에서도 언젠간 염의 향기나 나오지 않을까요?

부처님의 바른 정법을 몸과 마음에 익혀 부처님의 유음이 닿지 않는, 부처님의 법을 아직 모르고 괴로워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부처님의 그림자가 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늘 지니고 다니며 제가 방향을 조금씩 잘못 틀고 있음을 느낄때마다 스스로를 다잡는 나침반이 되어주는 달라이라마의 발원문을 들려드리며 법문을 마치고자 합니다.

아! 높아라. 부처님의 깨우치심과 제자들의 수행력이여!

고해에서 헤메이는 중생들을 위하여

이 법등이 널리 비추이길

시방의 부처님 전에 발원 하나이다.

한 생명도 남김없이 열반을 얻을 그날까지

자신의 열반을 미루신

부처님께 두 손 모아 발원하옵니다.

나의 적도 무로 돌아갈 것이며,

나의 벗도 무로 돌아갈 것이며,

나 역시 무로 돌아갈 것이니

만사가 무상하도다.

만사가 덧없음이여!

기뻤던 일은 모두 기억속으로 사라지고

한번 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 법.

묶인자 풀어주고,

갇힌자 석방하고,

얽메인자 해방시켜

뭇 생명을 남기없이 열반으로 이끌리라.

부처님도 남의 죄를 씻어줄 수 없으며,

남의 고통을 대신 덜어줄 수 없으며,

대신 깨우쳐 줄 수도 없나니

중생은 오직 진리를 통해서 해탈을 얻을 수 있나니

이것이 궁극의 진리이니라.

부디 전생에 쌓은 내 선업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남기없이 멸할 수 있기를 발원하나이다.

綠陰이 무지개 빛 아름다움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이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도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 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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