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공양의 의미 -진벽스님-

가람지기 | 2008.09.18 15:27 | 조회 3733

정직하고 순수한 공양은 마음의 편안을 얻게 하며 기쁜 마음으로 하는 공양은 공양하는 자와 공양 받는 자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아함경-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진벽입니다.

저는 이번 차례법문을 계기로 공양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행자 때 부터 시작한 후원에서의 생활은 설거지, 나물다듬기등 공양준비를 위해서 하루종일 보내는 것이였습니다. 너무 힘들때는 ‘몸에 좋은 약들은 잘도 만들어 내면서 식사 대용할 수 있는 약들은 없는건가’ 하면서 푸념을 늘어 놓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김치를 썰때는 발우김치는 손가락 두마디 길이로, 찬상김치는 발우김치 보다 조금 더 길게 썰어야 한다고 해서 이리저리 재며 썰었습니다. 잘못 썰었을때는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가지런히 담으려 했다가 어른스님께서는 “더러워서 못 먹겠다” 며 걱정하셨지만 우리는 몰래 어떻게든 예쁘게 그릇에 담아서 내 보내려고 서툰 솜씨지만 한껏 뽐내며 바삐 움직였습니다.

어느날에는 나물을 다듬다가 소쿠리가 멀리 있어서 하나씩 하나씩 던져 넣었더니 어른스님은 장난스럽다고 생각하셨는지

“행자님! 지금 뭐하는 거예요?”

스님의 걱정스러운 말씀에 무슨뜻인지 몰라 어리둥절 해 하는데 “이 나물로 음식을 만들면 큰방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드실것인데, 그렇게 던질수 있어요. 음식을 만들때만 정성스럽게 하면 될까요? 씨 뿌릴때부터 정성스럽게 길러서 수확하고, 수확한 것을 다듬을 때도..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답니다.

큰방에서 공부하시는 스님들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거나 몸을 살찌우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육신이 필요하기에 몸을 지탱하기 위한 약으로 생각하며 수행의 또 다른 면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만들어 공양해 드리는 것이 복짓는 일이 되고, 그 작은 복의 씨앗들이 모여서 행자님이 평생 중노릇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부끄러웠지만 한편 무슨 뜻인지 알아 듣기에는 저의 절집에서의 생활이 짧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 대중스님들을 위해서 여름내내 땀흘리며 채소들을 길러내다 보니 행자때 스님이 해 주신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공양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공급한다, 공시(共施)한다, 자양한다’는 뜻입니다. 공경하는 마음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음식이나 약 혹은 필요한 일용품등을 불보살님 전이나 부모님, 스승, 어르신 내지 영가등에게 공급하여 스스로 복을 자양하는 것이 바로 공양의 참다운 뜻입니다.

마음을 다해 바치는 정성스러운 공양은 삼륜이 청정할 때, 다시 말해 받는 사람, 공양물, 시주하는 사람이 모두 청정할 때 더욱 큰 공덕이 뒤 따른다고 합니다. 서원을 세우고 수행 정진하는 실천과정의 하나로 공양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공양은 곧 탐욕에 가려져 있는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는 수행이며, 이웃을 향한 끝없는 자비와 보살행 실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밥티의 소원’이란 책에서 읽은 내용을 간략히 소개 해 드리고 싶습니다.

노스님과 행자님이 함께 공양을 하고 있습니다.

행자님이 떨어뜨린 밥알이 슬프게 통곡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듣지 못하자 안타까운 마음으로 노스님은 “귀를 통하여 듣는 소리나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은 모두가 환상이며, 무상이요, 거짓된 것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소리 없이 듣고 빛없이 보는 것이 진실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 노스님이 주문을 외우자 밥알이 형색이 남루한 사람으로 변신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저도 한때는 사람이었으나 행실이 사람답지 못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 과보로 인하여 삼악도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후 인간이 되기 위하여 수천 수만년 전 부터 뼈를 깎고 살을 베어내는 참회의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흘러가는 물이 되고 지나가는 공기가 되어 사람에게 마셔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저의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져 스님의 발우에 담겨져서 기쁨이 몇 백배 몇 천배 더했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마지막단계에서 행자님의 숟가락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으니 그 슬프고 원통함은 어찌 다 말씀드리오리까? 이제 저 신세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방바닥에 말라서 흙먼지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하수도 구멍에 들어가서 지렁이 밥이 되었다가 썩고 썩어 또 다른 무엇이 되겠습니까? 언제쯤 인간의 몸을 받을 기회가 오겠습니까?”라는 말을 마치자 눈물을 흘리며 ‘내 언제 다시 인간이 되려나’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밥알로 변했다. 이제까지 밥알의 말을 듣고 있던 행자님는 그 밥알을 얼른 주워 먹으면서 밥이 똥만 되는 것이 아니라 눈도 되고, 입도 되어서 사람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눈물로 천만년을 간절하게 애원하고 기도하여 사람이 되겠다던 밥알의 발원을 거듭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민의 노고가 스며 있으며, 절집의 상주물이 모두 시주하는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담긴 물건들인데, 종종 마음을 두지 않고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세상의 유정, 무정, 무색의 중생들의 소원은 만물의 영장,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것을 모른채 음식을 아무렇게나 먹고, 버리고 있으니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이런 죄를 지으면 그 세포들도 죄를 지은 업보를 받게 되는 것이니 한생각의 잘못으로 죄없는 그 많은 존재들의 운명에 소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풍성한 가을 행복한 수행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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