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마음도량 펼치면서..-현오스님-

가람지기 | 2008.09.21 12:42 | 조회 3101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현오입니다.

오랜 속박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의 세계로 진입한지 이제 겨우 두 어해가 지났습니다. 늦깍이로 출발한 탓에 쉽게 적응되지 않는 환경과 버리지 못한 습관들로 치문반의 첫 철나기가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았으나, 지나온 매 순간들마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소중한 살림살이였기에 이젠 행복이 무언지, 감히 삶의 진가에 대한 확신까지 얻어내어 신심나는 하루하루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저는 운문사라는 또 하나의 우주 안에 제 마음을 송두리째 던진 이후 망상을 엎어버린 그 중심에서, 온전한 마음자리를 일궈내 일체 만법을 지금 여기 이 안에서 해결하고자 원을 세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리를 추구하려 하지만 그러나 세상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무조건 이익이 보장되지도 않으며 천재지변 이라든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사태로 인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위적으로나마 불가사이한 어떤 힘을 찾게 됩니다.

이럴 때 부처님께 매달리면서 기도만 한다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이 나의 과업 때문임을 인식하고 좋은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남에게 먼저 돌려주고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내다보면, 자연스레 빈 마음이 되어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연계해 온 업은 점차 소멸돼 자기를 버리는 일도 훨씬 쉬워지겠지요.

그것이 거울에 때를 닦아내듯 마음의 때를 벗겨내는 것이요 또한 그것이 바로 부처의 마음자리라고 생각됩니다.

‘不觀心이면 無以通이라 一切世間中이 無不從心造라 如心佛亦爾하며 如佛衆生然하야 心佛及衆生이 是三無差別이라.’

‘마음을 관조하지 아니하면 통할 수 없음이라. 일체 세간이 마음을 쫒아 짓지 아니한 것이 없나니 心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며 부처와같이 중생 또한 그러하니 마음과 불과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음이라.

치문 勉學에 姑蘇景德寺 덕운법사의 글을 새기면서 문득 은사스님의 말씀이 생각나 다시 한 번 마음을 챙겨 봅니다. 언젠가 은사스님께서 제가 일을 하고 있는 걸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쓰면 쓸수록 무한대로 커질 수 있는데 왜 그 용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써 먹지 않느냐”고 걱정하셨습니다. 그 때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했으나

이젠 마음에 차별을 두어 붙잡고만 있는 게 아니라 놓아버릴 수 있어 홀가분 합니다.

깡마른 땅에다 마음이 넉넉한 자가 과실나무를 심으면 탱자도 유자가 된다고 하듯이,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대지에 누운 마음으로 심지를 돋우게 되면, 모든 세간에 없는 것 없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필요할 때 언제든지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듯 우주의 기운을 다 머금게 되겠지요.

마음에 크고 작고의 차원이 아니라 생각이 차원을 만들어 지옥과 극락이 생기게 되고, 세상도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라 봅니다.

덩치 큰 코끼리의 마음과 생쥐의 마음이 다르지 않듯이 우주를 감싸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마음이 한결같을 것입니다.

또한 우주를 닮은 둥근 마음은 아무런 장애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어서 늘 자유롭습니다.

‘원’이라는 것은 완벽하게 비어있으면서도 가득 차 있어서 너와 내가 따로 분류됨이 없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마음에 어떤 기점도 만들지 않아 각도가 없는 단지 원형 그 자체 일뿐이죠|. 우리가 일을 함에도 늘 자취 없는 마음으로 하면 얽매이지 않아 그 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나’라는 족적을 단서를 남기지 말고 흔적없이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서 자취 없는 빈 마음이면 허공중에도 거리낄게 없이 마음이 일여하여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을 때에, 모름지기 본성의 체가 당당히 드러나 산란함을 여의고 일체의 근진에서 멀리 떠나와 물듦이 없어지리라 봅니다.

이제 모든 결실을 거둬들이는 계절에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내 옆 도반에게는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내 마음의 부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마음 부처의 세계에서 보면 홀연히 지나가는 꿈속인데 이 순간 찰라에도 감사함과 고마운 에너지를 불러들이고, 멀고 가까운 알 수 없는 인연들에도 늘 고마움을 갖게 되면 그 에너지는 또 세상에 빛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운문사 대중스님!

이 운문사 청정도량에서 마음의 등불이 끊임없이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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