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정성껏 살아가기 - 해운스님

가람지기 | 2008.11.15 11:11 | 조회 2844

대중스님은 지금 이 순간 정성껏 살고 계시나요?

정성껏 살고자 했던 치문시절의 그 마음을 잊고 많은 망상 속에서 헤매고만 있는 사교반 해운입니다.

망상에 잡혀 경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제게 이 자리는 정말 어려운 자리네요.

운문인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자리이기에 전 원효스님과 설총에 대한 짧은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장성한 설총이 가을 어느 날 원효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원효스님은 마당에 낙엽을 쓸고 계셨죠. 설총은 왕자였으나 생부였던 원효스님께서 마당을 쓸고 계신 것을 볼 수 없어 본인이 비질을 하겠다고 했고 원효스님은 선뜻 비를 내주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참 뒤 동자가 원효스님께 설총왕자가 마당을 다 쓸었음을 알려왔습니다. 마당 한 구석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가을마당엔 낙엽 한 장 없이 정말 깨끗하게 쓸려 있었습니다. 원효스님이 마당을 다 쓸은 것이냐고 설총왕자에게 물었고 설총왕자는 당당히 다 쓸었다고 답했습니다.

원효스님께선 왜 깨끗한 가을마당을 보고도 다 쓸었냐고 물으셨을까요?

원효스님께선 웃으며 “가을마당을 쓸 줄 모르시는군요.”하며

쌓인 낙엽 몇 장을 마당에 뿌리며 “가을마당엔 낙엽이 이렇게 뿌려져 있는 것이랍니다.”라고 말합니다.

가을마당다운 것....... 전 이렇게 해석해봅니다.

설총이 쓸은 마당은 설총의 생각에 맞춰진 깨끗한 마당이었고, 원효스님이 낙엽 몇 장 뿌린 마당은 가을마당 이었다고 말입니다.

황대권씨의 ‘야생초 편지’에는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사람을 생긴 대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이 글귀를 모 사이트에 올렸더니 이런 답 글이 나왔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수행자가 아니니까요.”

머리를 깎을 생각도 하기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사교 겨울철을 바라보며 새삼 생각해 봅니다. “나는 왜 운문사에 있는 것일까?”라고.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결정은 내가 한 것이니까, 주위에서 아무리 등 떠밀고 협박하고 유혹해도 내가 아니라고 했으면 여기 없었을 거니까요. 결국 최종적인 결정은 내가 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내 결정에 따라 당연히 운문사에 있는 것이고, 운문사에 있으니깐 새벽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당연히 정신없이 뛰는 것이랍니다.

이 정신없는 생활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가운데에서 옆 도반이 힘들어하지는 않는가 살펴보고, 정랑 앞 신발을 가지런히 살펴보고, 도량 내에 휴지가 떨어져 있지는 않은가 살펴보는 등의 정성을 기울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 아닌 지론입니다.

원효스님께서 당연히 마당의 낙엽을 쓸어야 하니까 쓸되, 가을마당에 낙엽 몇 장 뿌리는 것을 잊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나무가 햇빛을 받아들이듯이 우리가 우리를 받아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왜가 아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듯이.

은행나무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지금 가을마당을 한번 생각하는 정성을 기울이며 생활하시길 바라며 전 이만 내려가고자 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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