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事 師 - 아정스님

가람지기 | 2008.11.15 13:30 | 조회 2983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아정입니다.

ʻ일천겁 동안 함께 선근을 심은 자는 같은 국토에 나게 되고,

이천겁이면 하루 동행을 하며,

삼천겁이면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되고,

사천겁이면 한 고향의 동족으로 나게 된다.

오천겁이면 한동네에 나서 같이 살게 되고,

육천겁이면 하룻밤 동침하게 되며,

칠천겁이면 한집에 나서 살게 되고,

팔천겁이면 부부가 되어 살게 되며,

구천겁이면 형제가 되어서 살게 되고,

십천겁이면 부모나 스승과 제자와의 인연이 된다.ʼ


위 내용은 삼세 인과경에서 나온 이야기로서 만남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제비뽑기를 해서 되었던지, 순서대로 되었던지 아니면 노스님께서 정해준 인연이 되었다하더라도 전생부터 인연을 심었기에 스승과 제자로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은 부처님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늙어 몸은 갈수록 쇠하고 목숨은 끝나려하니 마땅히 시자를 두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마음속으로 자기를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 아난다는 너무 무거운 임무라는 것을 알았지만 결국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첫째, 부처님을 위해 만들어진 의복을 받지 않는다

둘째, 부처님을 위해 만들어진 공양을 받지 않는다.

셋째,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다 들을 수 있다.


이때부터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입적하실 때까지 24년 동안 곁을 떠나지 않고 잘 섬겼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2500년 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 곁에 계시는 노스님과 은사스님을 통해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은사스님이 사미니였을 때의 일입니다. 미역을 잘라서 국을 끓여야하는 것을 몰랐던 시절 잠을 자면서도“스님,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다 하겠습니다.”라고 잠꼬대를 하자 노스님께서는 “니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노? 뭘 그리 니가 다 하겠다는 기고?”하시고는 웃으셨답니다. 할 줄 아는 것은 없지만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어 한다는 상좌의 마음을 보신 것이었습니다.


또 마지막 입적하시기 3일전에 은사스님은 노스님 귀에 대고 “스님, 사랑해요”라고 속삭이자 노스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환한 웃음으로 답하셨다고 합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두 분만의 각별하신 삶이 묻어져 나와 저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아름다운 마음을 따라 배워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스승을 시봉하는 것을 한자로 사사(事師)라고 합니다. 첫 글자 ‘事’는 받들어 섬김에 게으름이 없는 것을 말하며, 두 번째 글자‘師’는 사람을 가르치는데 게으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곧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 스승이며, 시봉은 그 자체가 곧 수행이며 공부인 것입니다.


사미니 율의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모실 때 마땅히 네 가지 마음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친애함이요, 둘째는 공경하고 따름이요, 셋째는 두려워하며 어렵게 여김이요, 넷째는 존중함이라’


이 네 가지 마음을 갖추고 서로서로 공경하고 존중한다면 능히 정법이 오래 머물며 이익이 더욱 넓고 크게 된다고 합니다. 스승을 잘 모신 공덕으로 다음 생에도 좋은 스승을 만날 수가 있으며, 좋은 가르침을 들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스승은 이생과 다음 생까지도 자신을 일깨워 주는 뿌리와 같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스승님 시봉하기’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우리 모두 부처님과 아난다처럼 또 노스님과 저의 은사스님처럼 서로의 마음을 알아 차려 시봉 잘하며 삽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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