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원력 - 담월스님

가람지기 | 2008.11.16 12:51 | 조회 3130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담월입니다.


차례법문이 다가오면서 부담감으로 머리 속이 하얀 상태였는데, 이 운문사에서 차례법문만 빼놓고는 모든 일에 대타를 세울 수 있다는 말에, 이번에는 머리속이 까맣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한 번 미루어 볼 수 없을까, 몸이 많이 안 좋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갖가지 생각을 하다 어젯밤 잠이 들었습니다.

평소의 새벽예불 시간 같으면 혼침 상태에 빠져서는 백팔 예불 대 참회를 시작하고서도 절반은 지나야 힘이 생길텐데 오늘 아침에는 정신이 말짱하고 다른 때보다 다리에 힘이 넘쳐 가볍게 108배를 했습니다.

피하려 하면 더욱 가까이 오는 것인가 봅니다. 그렇게 다가온 차례법문에 있어서, 아직 씨도 영글지 않은 과실을 내놓게 되어 너무 죄송합니다.


저는 오늘 원력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출가 전 부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 때 <지장보살본원경>을 보았습니다. 지장보살이 과거세에 바라문의 딸이었을 때 악도에 떨어진 어머니 열제리를 위해 각화정자재왕여래의 탑이 있는 절에 공양을 베풀어 복을 닦고 탑사에 보시한 공덕으로 어머니만 천상에 난 것이 아니라 그 날 무간지옥에 있던 죄인 모두가 함께 천상에 나서 즐거움을 누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교회 다니면서 “주님께 모두 맡기오니....... ” 아니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항상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배우고서 그대로 기도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럼 나는 뭐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교회를 가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천당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지장경에서는 잘 둔 지옥도반 덕분에 지옥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천상락까지 누렸다니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바라문의 딸은 각화정자재왕 여래의 탑과 존상 앞에서 서원을 세웁니다.

‘바라옵건데 저는 미래겁이 다하도록 죄고가 있는 중생이 있으면 마땅히 널리 방편을 베풀어 모두 해탈하도록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장보살의 위신력과 서원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만약 뒷날에 신심 깊은 남녀가 있어 자장보살의 명호를 듣고 혹은 찬탄하고 혹은 우러러 예배하고 혹은 이름을 부르고 혹은 공양을 드리거나 그 형상을 그려서 조각을 만들어 모시면 이 사람은 백번을 거듭하여 저 33천에 태어날지언정 결코 험한 길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이름만 듣고도 33천에 태어난다!’

그 원력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그 때부터 ‘원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절의 후원 식당에서 50대 후반의 한 비구니 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법문을 하시는 자리도 아니었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아닌, 그저 이 전의 주지로서 그곳에 있던 신도들과 잠깐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고, 저는 다른 신도님들보다 몇 발자국 뒤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구니 스님께는 아주 강한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다 ‘원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그 스님께서 많은 불사를 하셨고 지금도 많은 일을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력이 크신 스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원력이라는 단어를 마음 한켠에 두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주위 분들로부터 하도 힘이 없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저 자신은 물론 힘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 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그다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 어깨가 좁아 쳐지게 보여서 그래요.” 그렇지만 강원생활은 힘들어 지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원력이 곧 생명력이고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이 저를 붙들었는지 모릅니다.

원력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두고 있다 보니 불보살님의 세계에는 원력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예불 때마다 하는 천수경의 내용도 원력으로 가득했습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나무대비관세음 원아 속도일체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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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동법성신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며 이렇게 서원을 세운 이는 누굴까.

책을 찾아보니 관세음보살의 10대원이라고 합니다. 자비의 어머니 관세음보살의 원을 자신의 원으로 삼는 천수행자의 원이라고도 합니다.

이어서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내가 칼산 가면 칼산지옥 저절로 무너지고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내가 화탕지옥가면 화탕지옥 저절로 없어지며

.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까지 이를 육향이라 합니다. 하지만 발원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육향을 염하면서 지장보살님의 과거세의 어머니인 열제리와 그의 지옥 도반들이 모두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각화정자재왕여래의 서원이었을 거라는 생각과 그 서원이 이루어졌던 것처럼 칼산이 무너지길 원하면 그대로 다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한동안 정근하거나 천수경을 칠 때면 지옥에 있는 중생과 풀벌레까지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염불하기도 하였습니다.


아금지송대준제 즉발보리광대원

제가 이제 준제주를 지니고 독송하는 것이 곧 보리심과 넓고 큰 원을 발하는 일이 됩니다.


원아정혜속원명 원아공덕개성취

원아승복변장엄 원공중생성불도

에 이어 모든 부처님의 서원인 여래십대발원문, 사홍서원.

이처럼 천수경 전체가 서원과 불보살님께의 귀의로 이루어진 것은 곧 천수경을 독송하는 천수행자가 “그렇게 살겠다.”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보현보살의 십대 행원과 문수보살의 중생제도를 위한 십대원, 약사여래 부처님께서 과거세에 약왕보살로 계실 때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

비구로써 48대원을 세워 그대로 극락정토를 이루신 아미타 부처님, 가까이로는 “내 모습을 보고 환희심을 내어 모두 해탈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요.”라고 말하며 언제나 웃으며 온 도량을 누비는 우리 도반스님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아마 부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말씀하셨던 “일체개고 오당안지”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저 역시 출가 전에는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과 같은 큰 원을 세워 일체 중생을 구제할 수 있게 되기를 늘 발원했고 또 그 힘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상에 쫓겨 모두 잊어버린 채 아무 마음 없이 몸만 구부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퇴굴심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출가 전보다 기도도 안하고 마음도 간절하지 않으니 계속 이 생활을 해야 하나? 출가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하는 생각이 들 때가 문득문득 있습니다. 생각하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서 나와야 할 원력을 저만의 원력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출가할 때 큰 서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도반 스님들처럼 출가를 운명이라고 느껴 한 것도 아닌 그저 법정스님의 <인연이야기>를 시작으로 부처님 말씀을 보면서 그렇겠구나, 정말 그렇겠구나. 나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출가라 그만큼 갈등과 힘듦과 흐지부지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의 은사스님께서 항상 하시는 “스님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가도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갈 걸 아니까 믿는다.”는 말씀을 언덕 삼아 대원력이 아닌 저 자신을 위한 원을 이 곳 강원에서 세웠습니다.

강원 졸업하기 전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서 부처님의 가피, 위신력을 체험하는 것과 부처님 말씀을 “그렇겠구나”가 아닌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 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대중스님께서도 한 분 한 분 모두 다 원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힘든 생활 속에서 원을 이루겠다고 항상 웃으며 온 도량을 누비고 다니는 우리 도반 스님처럼 서원이 있어 행복하시고 그 서원이 묻히지 않고 늘 새롭게 발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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