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10대 선사 이야기 - 승안스님

가람지기 | 2008.12.25 10:21 | 조회 3376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승안입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우리들의 치문생활도 다 지나가는 12月입니다.

해마다 듣는 말이지만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多事多難한 한 해였습니다.

‘多事 - 일도 많고, 多難 - 어려움도 많음’이라는 말이 치문 1년 동안 이렇게 가슴에 와 닿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짧은 가을 휴강 때입니다.

저는 은사스님 토굴에서 우연히 <대승기신론이야기>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책 서문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종교적 경험에 의거하여 인간본래의 마음을 묘사하고자 한 것이다. 또 옛 고승들의 실천 수행을 밑거름으로 하여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원효, 혜능, 마조도일, 치문에 나오는 혜충선사, 측천무후 등 많은 고승들이 나옵니다. 그에 착안하여 선사들의 얘기를 차례법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사란 마음을 닦고 생각을 고요히 하는 참선 禪 스승 師입니다.


내가 이 곳 운문사에 살았던 선원에 계시는 노스님들의 얘기를 할까합니다. 모두 70을 훨씬 넘기신 분들입니다. 여기서는 80세가 넘어야 노스님이라 칭합니다. 멀리서 그분들을 회상하며 우리 노스님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0대 선사 이야기”라고 나름대로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본의 아니게 법명을 직접 거론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송구스러운 일이나 널리 이해 해주시고 경책하는 마음으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첫째 우리 절의 제일 연장자이시며 우리나라에 몇 안 계시는 명사스님이신 정화노스님입니다.

인자한 모습이 저절로 신심이 납니다. 우리들에게 언제나 존대하시며 늘 下心을 몸소 보여 주십니다.


다음 둘째로 지계제일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지계 제일 현일스님입니다.

해제와 결제가 따로 없이 밤낮 주야로 큰방에 앉으시며 또 상, 하복 구분에 철저하십니다. 상, 하복 구분 못하는 스님에게 “다음 생에 구더기로 태어나고 싶냐”며 꾸중하십니다.

지금도 정정하시며 하루에 일종식을 하시고 약도 드시지 않습니다.

결제 때 받은 공양금을 몽땅 해일이 난 이웃나라에 성금으로 다 보내셨습니다.


세 번째 청정제일의 성근스님이십니다.

언제나 꼿꼿하시며 대중공사가 있을 때 마다 앞장서서 우리들이 발언하지 못한 얘기를 거침없이 시원스레 대변해 주십니다. 공양청이 있을 때 항상 가지 않으십니다.

별청이라 생각하시고 큰방공양으로 족하다 생각하시기 때문인듯 합니다.


네 번째 절약제일 현종스님입니다.

날이 밝아오기도 전에 가로등이 켜져 있거나 수돗가의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시면 난리가 납니다. 우리들에게 사중의 물건을 아끼는 법을 자주자주 일깨워 주십니다.



다섯 번째 천진제일 현찬스님입니다.

요리도 잘하시고 바느질도 잘 하십니다. 요리프로그램도 좋아하시고 동물의 왕국도 즐겨보십니다. 뒤뜰에는 오갈데 없는 고양이 형제들이 모여 삽니다. 고양이와 대화가 통하는 스님입니다. 스님이 고양이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면 고양이는 “야옹, 야옹”하며 대답합니다. 그러나 다른 스님이 고양이에게 말을 걸면 고양이는 저 멀리 도망갑니다. 스님께 묻습니다.

“ 스님! 스님은 동물을 왜 좋아하세요?”하고 물으면 동물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하시며 천진 동자승처럼 해 맑게 웃습니다.


여섯째로 인정제일 지철스님이십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시고 필요한 것이나 먹을 것을 잘 챙겨 주십니다. 도반같이 우리와 함께 있기를 좋아하시며 옛 선인들의 얘기, 당신이 수행하시던 것을 곧 잘 이야기해 주십니다.


일곱 번째 만행제일 정인스님입니다.

70이 훨씬 넘으신 연세에도 여름 결제를 끝내고 적멸보궁을 다녀오셨습니다. 저희들이 인사를 갔을 때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왜 중이 되었냐? 자유롭게 살려고 왔지?” 하시며 만행의 꿈이 50년 만에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50년 후면 저도 지팡이 짚고 만행을 떠나야 겠습니다”하니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여덟 번째 건강제일 자용스님입니다.

걸음걸이도 사뿐사뿐 아직도 뒷모습이 40대 같습니다.

지금도 다리 찢기가 일자로 쫙 뻗습니다. 또 장학제도를 마련하여 강원에 가는 스님들에게 장학금을 주십니다.


아홉 번째 활동제일 정우스님입니다.

도감소임을 맡으셔서 불사로 무척 바쁘십니다. 진취적이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장애 없이 원만 회향하시기를 바랍니다.


열 번 째 총명제일 우리 노스님입니다. 뱃속에서부터 절집에 계시면서 만공노스님께 ‘昭’자 ‘林’자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초발심자경문을 줄줄 외우시지만 당신의 주민번호는 외우지 못하십니다. 염불도 잘 하신다고 소문났지만 저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비구스님이 새벽 도량석 염불소리를 듣고 인사를 90도로 했다고 합니다. 또 절의 큰일들은 다 노스님께 자문을 구합니다. 그러면 적재적소에 맞게 일처리를 잘 해 주십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대중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좋으면 좋은 대로 본받고, 그르면 그른 대로 비추어 보아 자기 것으로 잘 만들어 가야 한다.”하시며, 중은 늘 대중 속에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어느 덧 우리 절의 10대 선사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저마다의 개성이 뛰어나지 않습니까?

평생을 선객으로 오로지 한 길만을 살아오신 분들이십니다.

예불자리, 공양자리, 운력을 빠지면 중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셔 항상 함께 하시는 어른스님들, 아주 기본적인 것을 지켜 가시며 그 연세에도 꿋꿋하게 선방에 앉으시어 선객들의 귀감이 되십니다.


화엄반 스님? 졸업하시면 선방에 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럼 저희 견성암으로 오십시오. 여기에 오시면 아까 말씀드린 10대 선사가 다 계십니다.

첫 선방은 동국 제일 선원 견성암으로 오십시오.


끝으로

제가 출가하려 했을 때 어느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수행의 길을 가라” 하신 말씀 그대로 우리 선사들의 뒤를 따르며 열심히 수행할 것을

다짐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선원에서 정진하시는 스님들을 생각하며 게송으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첩첩이 안개에 둘러 쌓인 산을 바라보며 바위 위에 올라서서 막힌 가슴을 토해 내며 불렀던 게송입니다.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何事西風東林野 一聲寒雁唳長天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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