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힘이 덜어지는 때가 힘을 얻는 때 - 아전스님

가람지기 | 2008.12.26 10:49 | 조회 3414


매서운 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고 개울가의 물은 손을 시리게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아전입니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 다가오면 제가 출가했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누구나 출가를 결심할 때는 어떤 전환점이나 확고한 의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 출가를 하고자 했을 때에는 막연히 평범한 삶으로 사는 것이 왠지 맞지 않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제가 존경하던 큰스님을 본받아 실천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절을 찾게 되었고 스님의 권유로 백일 동안 하루에 삼천배와 능엄주 21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절에 오기 전에는 가끔씩 절과 능엄주를 했었지만 많은 양으로 꾸준히 한 적은 없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고 하면 할수록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몸이 힘들다는 생각, 예전에 있었던 일들, 끝까지 기도를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등등이.......


그렇게 며칠을 보내던 중 새벽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급기야 전 더 이상 기도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고 주지스님께 내려가야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백일기도도 다 못 끝내고 무슨 일인들 제대로 하겠노. 힘들어도 백일기도는 끝내도록 해라.”하고 따끔한 충고를 하셨지만 저는 그 말씀의 깊은 뜻을 흘려버린 채 오로지 힘들고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렇게 해서 저의 첫 번째 출가는 불발로 돌아갔습니다.

4년이 지난 후 언니의 죽음으로 산다는 것이 꿈과 같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때에 이 사바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삶의 무상함마저 느꼈습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이라, 마음의 고통은 컸고 이러한 마음을 정리도 할 겸 여러 곳을 무작정 여행을 하였습니다.

우연찮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 집에서 며칠을 보내게 되었는데 집근처에 있는 절이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백일 정도를 했을 때쯤, 저의 마음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고, 출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출가하고자 했던 그 절 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저는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그 절로 갔습니다. 주지스님께서는 절 보시더니 “이번에는 끝까지 기도를 마칠 수 있겠제?”라는 물음으로 저를 맞아 주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이번에는 제대로 기도를 마쳐서 꼭 출가를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도하는 방법은 4년 전과 같았고, 세 번으로 나누어서 삼천배를 하고 틈틈이 능엄주 21편을 쳤습니다. 처음 며칠은 몸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오기 전에 제 나름대로 기도를 해서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어느 때에는 능엄주를 치느라 밤 열한시를 넘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날은 더 힘이 들었고, 특히 두 번째 이백배를 할 때는 몸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은 제대로 절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몸은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10일이 지나서야 조금씩 적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절하는 시간도 18분, 15분, 13분으로 줄어들었으며 능엄주하는 시간은 15분, 12분, 10분, 8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땐 절과 하나가 되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서 몸과 마음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백일기도를 하는 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끝까지 마치겠다는 일념과 주위 여러분의 도움과 격려로 무사히 기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서장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纔覺日用塵勞中에서 漸漸省力時에 便是當人의 得力之處며

便是當人의 成佛作祖之處며

便是當人의 變地獄作天堂之處며

便是當人의 穩坐之處며 便是當人의 出生死之處며

便是當人의 致君於堯舜之上之處며

便是當人의 起疲氓 於凋瘵之際之處며

便是當人의 覆蔭子孫之處니라.

道遮理에 說佛說祖하며 說心說性하며

說玄說妙하며 說理說事하며

說好說惡라도 亦是外邊事라.

날마다 있는 번뇌 속에서 점점 힘을 더는 것이 느껴질 때 바로 본인이 힘을 얻는 곳입니다.

본인이 부처님과 큰스님이 되는 곳이며,

편안히 앉아 있을 곳이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벗어나는 곳이며,

자기의 임금을 요와 순임금보다 더 훌륭하게 모시는 곳이며,

지친 백성을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 일으키는 곳이며,

자손들에게 보이지 않는 덕을 베푸는 곳입니다.

이 자리에 다다라서 부처님과 큰스님을 말하며, 마음과 성품을 말하며,

현묘(玄妙)한 이(理)와 사(事)를 말하며,

아름다움과 못생김을 말하더라도 이 또한 본분사 바깥쪽의 일입니다.


이 말은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다보면 점점 힘이 덜어지는 때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상생활을 하다가 지치고 힘든 일에 부딪히게 되면 행자 때 백일기도 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언젠가 힘을 얻는 때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또 자신을 다 잡곤 한답니다.


대중 스님 여러분, 대중스님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들을 하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혹시 지금 하시고 있는 일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지신다면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힘이 덜어질 때가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포기하지 마시고 열심히 정진하십시오.

언젠가는 반드시 성취할 때가 올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염불 다비문 가운데의 한 게송을 끝으로 저의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날때도 적적해서 生을 따라가지 않고

죽을때도 당당해서 死를 따라가지 않음이라

生死로 가고 오는 것에 간섭함이 없으니

正體(본래면목)가 당당해서 눈 앞에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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