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일상생활, 그 속의 나를 봅니다-동환스님-

가람지기 | 2007.12.28 11:21 | 조회 3187

지난여름, 허리를 다쳐서 경산에 있는 한의원에 갔습니다. 침을 맞고 운문사로 돌아오는데 술 취한 사람이 팔을 벌려 제 앞길을 막았습니다. 무슨 얘기를 시작했는데, 시작과 동시에 저는 그 사람을 피해버렸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누가 팔을 톡톡 치길래 돌아보니 아까 그 사람입니다. 저는 너무 놀라 경산시정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사람은 저보다 더 놀랐습니다. 스님 체면에 달려 도망 갈 수는 없고, 태연한 척 정류장까지 와서 앉아 숨을 돌리는데, 또 누가 “스님.”하고 부릅니다. 고개를 드니 어떤 처사 한 분이 손에 낫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제가 놀라 벌떡 일어나니까 어디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운문사라고 그랬더니 같이 앉아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합니다. 저는 그 사람의 시커먼 얼굴과 손에 든 낫을 번갈아 쳐다보며 거의 울다시피 손을 내저었습니다. 제가 너무 놀란 것을 알아서인지, 그 사람은 오히려 저를 안심시키며 “알겠습니다, 스님. 알겠습니다.”하며 대합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기도를 안 해서 그런가, 아니면 잘못 살아서 그런가. 하루에 두 번이나 놀란 것이 기분 나쁘고 불안해서 법당에 가서 절을 해 보고, 관세음보살보문품 사경도 해 보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습니다.

이틀 후 경산에 가기가 무서워진 저는 대구로 갔습니다. 터미널에서 병원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데, 운전사가 자기 집안이 풍비박산 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술과 도박에 지친 집사람은 도망갔고, 아이들과 어렵게 살고 있으며,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병까지 얻어 너무 힘이 든다고 하소연 합니다. 저는 허리도 아프고 차멀미로 괴로운데 이런 얘기까지 들으려니 힘이 들었고, 솔직히 싫었습니다. 그래도 억지로 몇 마디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가까운 절에 가 보시라고 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도 “스님, 제가 요즘 정말 괴롭습니다.”라고 절절히 말하던 운전기사가 아직도 제 기억에 선명합니다.

운문사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며칠 동안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저의 행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은 것이 아닐까. 낫을 들고 있던 처사도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 벌초하러 가던 길이었을 수 있고, 술에 취했던 처사도 괴로워 하소연 하러 온 사람이었을 수 있었는데, 얘기를 들어 줄 용기조차 없었나? 무섭다고 도망가고 뒤늦게 내 마음 편하라고 법당 가서 기도하는 것, 그게 신심인가.

매일 종잇조각 들고 다니면서 외우기만 하면 뭐하나. 실제로 도움 되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도망이나 가면서.

자비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스님이라고 머리 깎고 옷만 입고 있구나.’

하여튼 형편없는 제 살림살이를 제대로 확인하게 되었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행자 때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대구로 나오는데, 달리는 차 안에서 공원 벤치에 어떤 사람이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가슴 속에서 쿵소리가 났습니다. 아는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니고, 저를 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출가하기 몇 년 전에 제가 그렇게 앉아있었습니다.

저는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부자가 될 줄 알았지요. 그러나 남는 것은 가슴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빚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돈도 싫고 사람은 더 싫고, 그보다 앞으로 살아야 하는 인생 자체가 막막해져서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아, 이래서 사람이 떨어져 죽는구나.’하며 아파트 꼭대기를 하염없이 쳐다본 적이 있었습니다.

가끔 절집 생활이 힘들 때, 그 때를 생각하면 약이 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무슨 복인지 다행히 불법을 만나 출가를 했습니다.

‘그래. 큰스님 말씀처럼 이생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부만 하다 죽자. 빨리 공부를 해서 힘을 얻은 다음에 고요한 산속에 집 하나 얻어서 조용히 살다 죽자.’

이것에 제 목표였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했습니다. 운문사에 와서도 틈만 나면 마구니처럼 올라오는 생각이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나. 빨리 좌복 위에 앉아야 하는데. 지금 내 몸이 여기서 망가져 가고 있다. 큰일이다. 빨리 나가야 한다.’

이런 조급함에 자신을 콩 볶듯이 달달 볶아가며 일년 반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속가 집안에서 다니던 성당에 신부님이 저희 보살님을 통해 연락을 하셨습니다. 제가 편안한지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행생활을 하기 바란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답니다.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제가 바둥거리면서 살고 있는 것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자리며 본분자리며, 깊고 광대한 불법 속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고 4년을 살았는데, 편안하냐고 묻는 한 마디 말에 힘이 빠져버렸습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에만 미쳐가지고 내가 어떻게 공부를 지어 가는지 살필 생각을 안했습니다. 아니 몰랐습니다.

지난 여름, 경산에서 만났던 마을 처사님들과 안부를 물은 신부님 덕분에 크게 한 번 숨을 쉬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저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법정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라는 잠언집에 이른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산속에 들어가 수도 하는 것은 사람을 피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를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이다.”

저는 이 수행의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이 길도 잘못 가면 또 다른 빚만 무더기로 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두렵습니다.

부끄럽지만 전 이제껏 누군가에게 부처님 법을 전해야겠다, 포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이 괴로웠는지 꼭꼭 숨어서 내 공부만 하겠다는 생각을 좀 바꿔야겠습니다. 나와 남을 생각하는 실질적인 공부로 말입니다.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던 사람만 봐도 가슴 속에서 쿵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나의 괴로움이 컸다면 다른 사람의 괴로움도 생각하는 수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혼자 조용히 살면서 겨우 우리 부모님이나 조상천도를 바라는 출가인의 삶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향한 자비심을 키워야겠습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진정으로 행복하다면, 제가 행복한 만큼 나누며 사는 것이 부처님의 혜명을 잇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이 겨울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고 계십니까. 깊어가는 겨울만큼 여러분의 사유도 깊어지길 바라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