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마음을 낮추며 -진묘스님-

가람지기 | 2008.04.06 15:38 | 조회 2774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진묘입니다.


어느 겨울눈이 많이 왔습니다. 침대에 누워계신 어머니께 물을 드리려고 일으켜 세워 안았습니다.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곧 어머니께서는 오랜 병고 끝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 한쪽에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 49재를 지내주면 좋다고 했습니다.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형제들과 저는 좋다는 이유만으로 49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아는 스님의 소개로 어머니의 49재를 상의하러 어느 절에 갔습니다. 주지스님은 따뜻하게 맞아 주셨고 나를 보자마자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출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법당에 가서 절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갔습니다. 계단 하나하나 올라가는 걸음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문고리를 잡고 법당 문을 열었습니다. 법당 문을 연 순간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온몸으로 스며드는 편안함. 나도 모르게 어느덧 부처님 앞에 공경히 엎드리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감격은 계속 내 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스님에게 전화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세계가 있는데 왜 나를 일찍이 그곳으로 이끌어주지 않았냐며 따졌습니다. 빨리 나를 스카웃 해 가라고 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 어머니의 49재로 인하여 저는 자연스럽게 출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나의 뜻을 형제들과 주위친지들 친구들에게 발표했습니다. 아무도 붙잡는 사람이 없더군요, 친구와 같은 길을 가는 수행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 친구는 현재 나의 사형이고, 같은 은사스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사형은 제가 절에 오자마자 대중 속에서 생활하려면 주의할게 많다며 행자로써 해야 할 일들을 조목조목 알려 주었습니다.

그중 하심을 강조했습니다. 절 생활은 밖에서 본 고요함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바쁨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나간 일을 뒤돌아 볼 시간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도 없고, 순간순간 부딪히는 일에도 금방금방 지나가곤 했습니다. 우주의 축소판 같았습니다. 주의사항은 얼마나 많던지. 나의 짧은 절 생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스님들의 생활모습. 저는 밤이면 밤마다 은사스님께 인사하러 가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묻곤 합니다. 그것은 금방 아는 게 아니라 절 생활을 하다보면 스스로 알게 되고,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도반스님과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형님이 그 광경을 보고 저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 경책하였습니다. 절에서는 한 시간이라도 먼저 들어온 사람이 위차서가 되고, 소임자스님이 설사 하는 일이 부당하더라도 소임자스님을 존중해야 한다며 하심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사이가 좋지 않은 스님에게 하심을 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서로 불편한 마음으로 같이 일할 때마다 화가 나는 강도는 높아만 가고.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나한테 아무런 이익이 없음을 알고 내가 왜 그 스님을 그토록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편견이었습니다. 주위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 한 것을 저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공평하게 생각지 않고 법부들이 하는 것처럼 어리석게도 저는 그속에 빠졌던 것입니다. 원인이 나한테도 있는 만큼 내가 변해야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스님이 나한테 친절하게 했던 일을 생각했습니다.

딱 한번 이었었습니다. 나보다 20일 먼저 왔다고 도량 안내를 아주 친절하게 해줬던 일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라도 예, 예,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를 대하는 마음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그가 운력과 소임살 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잘 피해 다녀도 저는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가 뺀질이 부처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변화시켜 나를 버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스님은 저를 낮추고 하심하는 공부를 시킨 좋은 도반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하고 안 맞는다고 해서 상대를 밀쳐내곤 하지요. 내가하는 것은 옳고 남이 하는 것은 그르다고 판단하고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며,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려고 하지 않고, 혹 아래 사람에게 무시하는 말을 하며, 상대방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갑니다.

이 모두가 마음속에 아만으로 가득 차 있고,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없어서 생기는 것들입니다.

자경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밖으로 위엄이 있어 존귀한 것 같아도

안으로 얻은 것이 없으면 썩은 배와 같나니

벼슬이 높을수록 뜻을 겸손하게 하라.

너다. 나다하는 생각이 사라지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나니

무릇 마음을 낮추는 사람에게 만 가지 복이 저절로 들어오느니라.

우리는 강원생활에서 배우는 입선 시간의 간경과 합송, 운력, 소임 등 모든 생활이 서로 화합하여야만 가능한 일이며 이 화합의 장을 이루는 최고의 덕목이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좋은 봄날처럼 우리서로 하심하고 화합하며, 의미 있고 희망찬 내일을 향하여 정진여실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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