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알고 있다는 것과 알아차린다는 것에 대해서 -능주스님-

가람지기 | 2008.04.06 16:03 | 조회 3147

대중스님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능주입니다.


매년 맞이하는 봄이지만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에서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망울들은 항상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합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대중스님들은 모두 첫 발심해서 출가했던 그 날의 다짐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속가시절 무늬만 불자였던 저는 신심이라는 이름하에 용감히 출가했건만 스님 생활에 대해서 아는 것 하나 없었던 제가 아마도 은사스님께서 보시기에 조금은 위태로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예불문을 외우기 시작할 무렵 은사스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마음이라는 게 안에만 있으면 좋은데 자꾸 밖으로 돌아다니는 버릇이 있다. 그걸 네가 불러 들이고 불러들이고 해서 항상 네가 잡고 있어야 된다.” 그 땐 그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좀 더 시간이 흘러 행자 교육 기간을 거치며 전 진정으로 그 말씀의 뜻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은사스님의 그 말씀처럼 형체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잡고 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나 이 곳 운문사에서의 치문 첫 철 수많은 전달사항과 인수인계의 홍수에 빠져 있을 때도 말입니다. 그러한 생활이 점점 단조로워집니다. 치문반 스님들은 동의 못 하시겠지요? 하지만 조금 지나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하루 24시간을 세밀하게 쪼개서 계획대로만 움직이는 곳이 이곳 운문사입니다. 지난 일 년 원두반으로 사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는 핑계도 그럴듯합니다만 그 처음 빳빳했던 긴장감은 한 철 두 철 일상이라는 틀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칫 일상의 틀은 익숙함을 무기로 해서 그 생활에 안주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다니고 서 있는 발밑이 단단한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간이라는 것은 그 땅을 늪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지난겨울 방학, 전 마치 저 비로전 천정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악착보살처럼 가느다란 실 하나에 제 몸과 마음을 내 맡긴 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항시 출가의 이유를 되뇌이며 잘 잡고 있다고 여겼던 저의 신심이라는 끈은 손에 기름을 묻힌 마냥 자꾸만 빠져 나가려 하고 있었고, 제 발밑의 늪은 사정없이 저를 잡아당기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런 상태를 경험해 보신 분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상 사람 마음이란 것이 어떻게 한결 같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럴 때도 있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빈껍데기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 안일함이 우리에 독이 됨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알아차린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수행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자신을 챙기며 깨어있지 않다면 여기 있는 누구인들 저처럼 일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저는 매일 새벽 잔잔히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이젠 확연히 뒷줄에 놓여 진 자리에서 바라보아도 대중 스님들의 예불모습과 법당에 파도치듯 번지는 염불소리는 저로 하여금 다시금 신심의 끈을 잡은 손에 힘을 주게 합니다. 물론 아직은 완전히 제 마음을 다 찾아오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제 마음을 알아차렸기에 다시 노력합니다.

작심하루인들 어떻습니까?


대중스님 여러분,

그 작심하루라도 매일 매일 이어나가 항상 자신을 잃지 않는 수행자 되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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