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인욕은 삶의 힘이다. -범수스님-

가람지기 | 2008.04.06 16:07 | 조회 3146

치문의 봄엔 사집의 봄을, 사집의 봄엔 사교의 봄만을 애타게 기다려 왔건만 막상 오늘의 이봄은 바쁘기만 할 뿐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게 또 화엄의 봄을 기다리고 있는 사교반 범수입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겁이 참 많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사물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부처님, 예수님, 귀신, 도깨비 등의 모습을 무서워했습니다.

그 무서움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첫 번째 부모님 사이에 이부자리를 한 후, 먼저 잠이 듭니다.

두 번째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싫어서 길거리를 방황합니다.

세 번째 어쩌다 혼자 집에 있게 되면 차라리 도둑이라도 들어오는 게 낫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정도면 재 두려움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하시겠죠?

또한 석가탄신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부터님이나 예수님, 십자가 등을 보게 되면 그 잔상이 오래 남아 밥을 먹다가 구토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며칠 동안 앎아 누울 때도 있었습니다.

저의 종교나 무속신앙에 관한 거부반응을 유난을 넘어 거의 병적이었습니다. 철이 들면서 속가보살님을 따라 시골의 작은 절게 가서 점심이라도 먹게 되면 절음식이 내키질 않아 물 한모금과 상추잎 몇 개만 오물거리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할 무렵 혼자 절에 심부름을 가게 되었는데 낯선 스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선 천진한 웃음을 머금고 차 한잔을 주셨는데 그 편안함에 끌려서 인지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르는 저의 두려움에 대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말없이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스님은 목에 걸린 108염주를 빼어 주며 열심히 기도 하라고 했습니다. 쳥소 같으면 괜찮다며 사양했을 텐데 넙죽 받고 말았습니다.

이틀 뒤 꿈을 꾸었는데 돌미륵부처님께서 저를 꼭 안아주면서 “이젠 괜찮아, 아무것도 두렵지 않단다. 항상 인욕 하거라” 이 말을 남긴 채 사라지셨습니다.

그 날 이후 거짓말 같게도 괜한 공포에서 오는 두려움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어버이날엔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꽃을 달아드렸고, 스승의 날엔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노래를 불렀습니다. 석가탄신일엔 부처님의 가피에 보답하고자 수백계의 비빔밥그릇을 닦다가 느낀바가 있어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인욕’이란 말을 들은 저는 사전적인 의미보다 “참을 인(忍)”이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며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속가보살님에게서 먼저 배웠습니다.

‘임에게서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에서 나는 인욕(忍辱)을 배웠노라“

선원에서 신심 나게 행자 생활을 하던 때와는 달리 운문사에서의 치문시절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공부보다는 소임이 우선시되는 분위기에서 오는 괴리감은 적지 않았습니다.

공양 후 후원에서 이루어지는 설거지, 입선 전 경상들일 때의 위치와 멘트, 법당에서 좌복 놓을 때 자로 잰 듯한 줄맞추기 등은 ‘지금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자주 반문해 보게 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걸려 넘어지면 걸림돌이요, 그걸 딛고 일어서면 디딤돌이 된다는 말은 저에게 자극이 되었습니다.

도량 내 풀 뽑고 입선 중 습의 하는 시간 등은 저의 공부에 있어서 걸림돌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모든 일이 짜증스럽고 화가 났습니다. 어른스님께서 먹고, 자고, 싸는 일 그 어느 하나 수행 아닌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사집의 끝 언저리에서 1년 동안 농사를 짓고 김장까지 마쳤을 때 저의 시선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싹이 트고, 물을 주고, 수확하기에 이르기까지 치문에서의 세심함과 정확성을 충분히 익히지 못했더라면 자연이 주는 이치를 몸소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저에게 운문사에서의 생활은 한마디로 정확성의 습과 인내를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년여 남은시간, 순간순간 파고드는 이 산란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고요한 내면으로 깊이 침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인욕 해야겠습니다.

출가 전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따끔한 경책으로 도움을 주셨던 스님의 당부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대중 생활을 하다보면 반드시 힘들거나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조건 부처님께 매달려라. 그리고 아름답게 회향 하거라’

대중스님, 목련꽃향기 가득한 여기 운문사 도량에서 한분도 빠짐없이 회향 잘 할 수 있도록 마음 단도리 잘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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