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하루-자연스님-

가람지기 | 2008.04.08 12:25 | 조회 3465

此心淸淨本無假어늘

只爲貪究被物遮로다

突出眼晴全體路하면

山河大地是空華리라.


이 마음이 본래 청정해서 거짓이 없거늘

다만 탐함을 입어 물을 구함이로다.

눈동자가 돌출해서 전체를 드러내면

산하대지가 이 허공의 꽃이로다.


이 게송은 고봉화상께서 대중들에게 보이신 『선요』의 한 구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어디에 부딪혀도 잘 부서지지 않는 차돌처럼 단단한 능엄경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사교반 자연입니다.


장애 없는 경반, 사교가 되기 위해 지난 겨울철 마지막을 앞두고, 3일간 ‘자비도랑참법’ 10권을 회향한 지도 엊그제 같습니다.


후원에서 반 스님들과 왁자지껄 대중스님들의 하루 세끼 먹을거리를 준비하면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나 자신도 모르게 또 하루가 흘러갑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현상은 반복되겠죠.


처음 운문사에 들어와서 과거현재 미래 부처님을 장엄한 대웅보전과 비로전 외에도 각각의 전각과 드넓은 도량을, 그리고 원두반이 되면 농사를 지어야 할 종각 밖의 밭들... 이러한 것들을 접하였을 때, 저는 ‘아! 이곳이야말로 각처에서 모인 대중들과 함께 원활하고 화합심을 내는 생활을 위해 나 자신을 배워가는 선불장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많은 대중스님들 속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저는, 한동안은 모든 것이 낯설어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후원의 각종 일과 울력, 때로는 간경, 예불, 수업 등을 통해 처음 발심해서 산문에 들어왔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 예불시간에 범종루에서 들려오는 법고소리를 들으며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셔 봅니다. 대종 소리의 긴 여운은 미혹한 중생세계를 깨우쳐 주려는 법음과 같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처음 이 운문사라는 도량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이곳에서 대중스님들과 함께 살면서 내면적으로의 공동생활은 겉으로 보기는 쉬운 것 같으나 쉽지 않습니다. 같이 생활하면서 각자 주장하는 바가 서로 맞지 않아 분열이 일어나기도 하고, 몸이 아파서 일이 마음대로 안되어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중은 대중인가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하고 자신이 힘들어도 대중의 힘으로 이겨내고, 무슨 일이든 대중이 함께 하면 힘든 줄을 모르는 경지에 이릅니다.


하지만 새벽에는 좀처럼 쉽게 눈이 떠지질 않습니다. 대중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눈꺼풀의 무게를 모두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성성하지 못한채 꾸역꾸역 올리는 백팔배에는 부처님께 죄송한 마음도 담고 있습니다.


한 철을 마치고 새로운 철을 맞을 때마다 반복되는 다짐이 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철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졸지말자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강사스님의 설명을 뒤로하고 졸고 있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근기의 하열한 탓일까요?


졸지 않고 성성력력하게 조사스님들의 경책을 진정한 마음으로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이지 수마의 왕은 굴복시키기가 어렵습니다.


그 옛날 선사들께서는 졸음을 쫓기 위해 송곳으로 찌르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서 참선을 하셨다는데, 그 이야기들을 제 눈꺼풀의 무게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아마도 번뇌가 많은 만큼 졸음도 많은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언제쯤 수마의 왕을 항복받아 졸음이 없는, 시원하고 맑디 맑은 시냇물처럼 성성한 정신으로 경전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의 마음속에 깊이 배어있는 번뇌가 없어져야 이 지독한 졸음도 없어질까, 미혹한 저로서는 자세한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졸음’이란 놈을 끄집어내서 혼쭐을 내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수마와 싸우고, 눈을 쥐어뜯으며 뜻을 알 수 없는 경전의 구절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기를 반복할 뿐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졸음 없는 수행자가 되어 성성력력 하기를 바람해 봅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대중스님들도 항상 성성력력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sung04_1207627995_93.jpg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