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이름값과 고무신-사교반 응선스님

가람지기 | 2008.06.23 13:48 | 조회 2876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응선입니다.

여름이라고는 하는데, 새벽과 낮의 일교차가 커서 쉽게 지치는

요즘인 것 같습니다. 꼭 하고 있는 모양새와 마음 씀이 어우러지

지 못해 '응선(應善)'에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못하는 제 모습 그

대로인 듯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혹시 삭발하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그 날의 감격, 그때의 기분 혹은 그 때 흘린 눈물의 의미를 지금

도 되새기고 계시는지요.

전 크리스마스 새벽에 삭발을 했습니다. 스님이 되겠다고 입산

한 다음날 새벽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른들 손에 이끌려 절에

다니긴 했지만, 불법이 뭔지도 모르던 제가 삭발하던 순간에는

저절로 참회진언을 외고 있었습니다.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

데, 개운하다고 여기며 까슬한 머리를 만져보았습니다.


첫 삭발을 마치고 노스님께 절을 했습니다. 노스님께서는 "하늘

을 덮고도 남는 복이 있어야 스님이 되는데, 머리를 깎고서도 복

없이는 살 수 없으니, 늘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선함에 응해서, 중

노릇 잘 합시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엉겁결에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노스님의 말씀은 아리송하기만 했습니다.

그 날 아침부터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저

기서 부르는 건 행자 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심할 때는 잠자리

에 들고서도 누군가 '행자님'을 부르는 것 같다고 여길 정도였으

니까요. 하지만 불려다닌 몫은 못했습니다. 나날이 치는건 사고

요, 하는 건 실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파란만장했던 행자시절을 추억하는 지금에야 자라나는 아이

들처럼 중으로 목숨을 받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실수 하지

않고, 사고 치지 않으면 그게 괴물이지-하고 조금은 의연해졌습

니다. 하지만 그땐 왜 그렇게 짜증도 나고 화도 나던지요. 처음에

는 모든 일에 서툰 제 자신에게 화를 냈고, 새로운 다짐도 해 봤

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사람의 단점 찾기에 바빠

지더군요. 더군다나 그런 매사에 "하심하며 살아야 복 받는

다."라는 노스님의 말씀은 딴 세상 얘기 같기만 했습니다.


대중스님들은 어떠십니까? 하심, 잘 하십니까?


'내가 아닌 사람은 누구건 내 스승이다. 나보다 못한 이에게서

도 배울 것은 있다. 나를 낮춤으로써 나를 높일 수 있다.' 어릴 적

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아직도 마음으로부터

겸손하고, 나를 낮추기는 힘이 듭니다. 지금도 반 스님들의 충고

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변명하기 일쑤인 제 모습을 자주 발견합니

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짜증내고 화내는, 별로 변하지 않

은 모습도 많습니다. 그래도 출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

들이 조금씩 가슴으로 느껴지면서, 그렇게 조금씩 스님이 되어가

나 보다 생각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저 스스로 복 받기에 목을 매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

니다. 머리를 깎았고, 계를 받았고, 지금 이 대중에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고 있는 이 시간이, 복 없이 가능했을까를 생각

해 봅니다. 이렇게 못나게 살고 있는데, 과거에 어떤 선근이 있었

기에 오늘 여기에 이르렀을까를 되짚어 보면서, 다음에도 그 다

음에도 부처님의 제자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중생업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더 많으니 불안할 따름입

니다. 그럴 때면, 하심은 못하더라도 눈길을 떨구긴 쉽습니다.

제 고무신 코 끝을 한 번 보는 거죠.

전 제 신발에 '착할 선(善)'자를 써 놨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서 다치고 실수하고 혼나면서 배우고 익혀가는 것이 삶입니다.

스님으로 자라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어다.

선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한다는 서장의 한 구절 처럼,

오늘에 이르도록 익어진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 더욱 노력

하고 노력하는 것이 그 과정일 겁니다. 제가 늘 고무신을 보는 이

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적어도 이름값을 하기 위한 노력은 기울

여 봐야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應

善, 선에 응하기 위한 저 자신과의 싸움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이 싸움과 수행, 공부에 있어서 더위나 몸 아픈 것은 장애라 할

수 없는 지혜가 생기길 간절히 발원해 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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