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자비, 보시 그리고 깨달음

가람지기 | 2008.06.23 14:56 | 조회 3074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자성입니다.

여름의 대명사인 땀과 더위는 아직 조복 받지 못한 마음과 몸

을 힘들게 하는데 외부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익숙하지 못한

강원생활에 적응해져 가는 두 번째 여름, 치문을 거쳐 서장을

배우면서 부처님과 조사스님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게 하는 내부적인 변화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출가 후 변화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저에게 부딪치는 현실과 사물들에 대한 사고와 시각의

변화였는데 예를 들어 말한다면 출가 전에는 배추 한 포기, 또

는 신을 신고 걸어 다니는 땅, 밟히는 셀 수 없을 정도의 흙들,

지나쳐가는 사람들 모두가 그냥 그 자리에 있어서 무의미하

게 저와 접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그런 사고들은 출

가 후 적어도 윗밭 아랫밭을 뛰어 다니면서 씨 뿌리고 풀 뽑

고, 작열한 태양열아래 푸르고 싱싱한 결과물들을 거두면서

채소들과 풀들과 흙들과 사람들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자

세히 살펴보면 그것들을 의지해서 사는 유정물들이 참으로 많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제각기 나름대로의 위치에서 본분

을 지키며 주위의 것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 유정물, 무정물들은 자의적이

든 타의적이든 주위의것들과 융화하면서 많은 것들을 자기의

것으로부터 타인들에게 무작정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

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시간들과 상황들이 소비되

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러한 사실을 직접 체험해서 알게 되었다

는 것은 제가 불법승 삼보의 가르침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

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보시란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의 보시란 육바라밀, 십바라밀, 사섭

법 등의 제1의 덕목으로서 자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건 없

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타정신의 극치로 보시를 행할 때는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그리고 베푸는 것도 모두가 본질적으

로 공한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 입

니다. 이것을 삼륜체공 또는 삼륜청정이라고 하는데 보시는

이종시, 삼종시, 사종시, 팔종시로 나누어집니다. 이종시는 재

시, 법시를말하고, 삼종시는 재시, 법시, 무외시를 말하는데

재시는 능력에 따라 재물을 보시하여 재물을 구하는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말하고, 법시는 진리를 구하는사람에게 자

기가 아는 만큼의 올바른 불법을 설명해 주어 그 사람의 수련

을 돕는 것, 무외시는 어떤 사람이 공포에 빠졌을 때 자신이

어려움을 대신하여 그 사람이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한편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음식시와 가난한 이에게 재물을 주는 진보시, 그리고 올

바른 법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신명시를 삼종시라고

도 하며, 팔종시에는 수지시, 포외시, 보은시, 구보시, 습선시,

희천시, 요명시, 위장엄심등시 등이 있는데 수지시는 나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고, 포외시는 재물이 없

어지는 것을 걱정하여 차라리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남에게 보

시하는 것, 보은시는 먼저 보시를 받은 것을 보답하기 위하여

그에게 다시 보시하는 것, 구보시는 후에 보시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시하는 것, 그리고 습선시는 조상에게 배워서 하

는 보시이며, 희천시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바라고하는 보시,

요명시는 좋은 소문이 나기를 바래서 하는 보시를 말하며, 위

장엄심등시는 마음을 크게 하여 아끼는 마음을 없애고, 정을

얻어 열반의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하는 보시입니다.

그러나 이상에서의 사전적인 보시도 있지만 부처님의 경전에

는 이보다도 더 멋지게 보시의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心住

於法而行布施 如人入暗 卽無所見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

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마음이 법에 머물러 보시를 행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어두운데 들어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눈도 있고 햇빛도밝게 비쳐서 가지가지 사물들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는 금강경의 제14분 이상적멸 분에 있는

말인데 선행을 베푸는 여러 가지 종류 중에서 가장 가치가 있

는 진리의 가르침을 제시하였고 그 방법에 있어서는 무주상보

시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법보시의 하나로 이 지구의크

기와 같은 금은보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공덕보다도

금강경에서 말한 진리의 가르침을 보시하는 공덕이 더 수승

함을 말하는 것 입니다. 법보시가 아니고 아주 하찮은 물질적

보시라 하더라도 생색을 내거나 자랑을 하거나뽐내거나 대가

를 바라거나 또는 보시를 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정한 어떤 기

준이나 자격이나 조건을 설정하여 그것에 맞추어 베풀게 되면

그것은매우 잘못된 보시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출발은보시행입니다. 베푸는 행위는 자

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고 자비스러움은 모두를 따뜻하게

하는 힘으로 만물을낳아서 기르고 자라나게 하는 힘입니다.

자비와 보시는 동격이기 때문에 보시에 의해서 생명은 태어나

는 것이고 따뜻하게 양육된다 할 것입니다. 태양이 비추는 것

은 우주의 보시행이요, 물이 대지를 적셔주는 것도 우주의 보

시행입니다. 천지만물이 다 끝없이 자비로운 보시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스스로를 살찌우고 복 되

게 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옆 도반스님이나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 볼 때 편안한 얼굴로

, 기쁨에 넘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면 그 자체가 훌륭한 보시

이고, 자비스러운 눈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도 쉽게 행할 수

있는 보시행 일 것입니다. 열심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

정진 한다면 그 향기로도 보시행이 될 수 있듯이 많은 이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처님을 닮아가

려는 실천수행일 것입니다. 대중스님들 정진여일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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