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공부-영민스님-

가람지기 | 2008.06.23 15:11 | 조회 2934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영민입니다.

자꾸만 감기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강사스님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어느 간경시간.

강사스님께서는 저에게 오늘 배운 것 중에서 어느 부분이 가

장 마음에 와 닿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그 시간은 대혜스님

이 진소경에게 답한 편지를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다음

과 같은 구절을 읽었습니다.

朱世英이 嘗以書로 問, 雲庵眞淨和尙 云호대 佛法이 至妙하니 日用에 如何用心하며 如何體究리닛고 望- 慈悲指示하소서 眞淨이 曰 佛法이 至妙無二하니 但- 未至於妙則-互有長短이어니와 苟至於妙則- 悟心之人이라. 如實知自心이 究竟하야 本來成佛이며 如實自在하며 如實安樂이며 如實解脫이며 如實淸淨하야 而日用에 唯用自心이 自心變化를 把得便用이언정 莫問是之與非라 擬心思量하면 早不是也니.

주세영이 일찍이 편지로써 운암진정화상께 물어 이르되, “불

법이 지극히 오묘하니 일상에 어떻게 마음을 쓰며 어떻게 몸

소 참구해야합니까? 바라건대 자비로 지시하여 주십시오.” 진

정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불법은 지극히 오묘하며 둘이 없다.

다만 오묘한 데에 이르지 않으면 서로 장단(부처는 훌륭하고

중생은 열등하다)이 있겠지만 진실로 오묘한 데에 이르면 마

음을 깨달은 사람이다. 여실히 스스로의 마음이 구경으로써의

본래 부처이며 여실히 자재하며 여실히 안락하며 여실히 해

탈하며 여실히 청정함을 알아서 일상에 오직 자기의 마음을

쓰며 자기 마음의 변화를 잡아서 쓸지언정 옳고 그름을 묻지

말라. 마음을 분별하여 생각하면 일찍이 옳지 않다.”

저는 그때 한참 모든 것에 대해 시비분별을 하고 있었을 때였

습니다. 이 꼴, 저 꼴, 여러 꼴들을 봐주지 못하다보니 내 몸속

의 모든 세포들은 반란을 일으키며 힘들어 했었고 당연히 제

꼴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꼴 보기 싫은 것은 내 옆의 짜

장 짬뽕들이 아니라 바로 그들 옆에 있는 ‘나’라는 짜장 짬뽕

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 본래 부처이며 청정한 자기 마음을

써야지 시비하고 분별하면 안 된다는 대혜스님의 말씀은 복

잡했던 제 마음을 일시에 정리정돈 해주며 부끄러움을 참회하

게 해주었습니다.

대혜스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생사가 도래함에 고요하고 시끄

러운 양변은 도무지 하나도 쓸 수가 없다. 시끄러운 곳에서 잃

는 것이 많고 고요한 곳에서 잃는 것이 적다는 말을 하지 말

라. 적고 많은 것과 얻고 잃는 것과 고요하고 시끄러운 것을

묶어 하나로 만들어 다른 세계로 보내라. 무상이 빨라서 한평

생 세월이 손가락 한번 튕기는 사이에 문득 지나간다.” 라고

하셨습니다. 시끄러운 현실 속에서도 고요하게 공부할 줄 아

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연꽃은 고

원육지에서 피지 않고 낮은 진흙 속에서 피어납니다. 거대한

함선과도 같은 운문사. 거대한 굉음과 절대적 침묵이 함께 자

리하고 있는 우리들의 수행처. 독특한 개성으로 똘똘 뭉친 운

문사의 스님들. 오롯이 홀로 갈 수 있는 힘도 있어야 하면서

그 홀로가 우리가 되어 어울려 살아야 하는 출가 수행자의 세

계입니다. 서로 깎이고 깎이면서 매순간 24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운문사에서의 5분. 이 5분이면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각자 나름대로 모두들 큰 원을 발해서 출가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위해서 이 운문사에 왔을 것입니다.

공부는 왜 해야 할까요?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사윤회의 이거대한 수레바퀴를 어떻게 하면 멈출 수가 있을

까요?

오늘도 여기저기에 인연 따라 끄달리고 끄달리면서 도반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 세상이 모든 고난의

원인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고 스스로 받을 뿐, 누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세상이 모든 행복의 원인 역시 자신의 마음이 스

스로 만들고 스스로 받을 뿐입니다.

제가 행자 때, 어른스님의 방을 청소하다가 벽에 걸려있는 어

느 스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순간 움직일 수 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웃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얼마나 아파야 가슴이 열리고

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릴까 얼마나 미워해야 사랑이 싹트고

얼마나 속아야 행복하고 얼마나 버려야 자유로울까

얼마나 태워야 오만이 없고 얼마나 썩어야 종자가 열리고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얼마나 미워해야 사랑이 싹이 틀까요.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요.

얼마나 닦아야 할까요...............

오늘... 또 난 누구를 시비하면서, 분별하면서 모두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더 참을 걸 하면서 후회하지 않았는지....

대중스님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많은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서,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떠나라>

올바른 견해로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하고 정진하면

서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면서 살아간다면, 운문사에서 살아가

는 것이 더 수월하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대혜스님의 글로써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일상생활의 수고로운 가운데서 점점 힘이 덜림을 아는 때가

문득 본인의 힘을 얻는 곳이며, 부처를 이루고 조사를 이루는

곳이며, 지옥을 변화시켜 천당을 짓는 곳이며, 편안히 앉아 있

는 곳입니다.

Here and Now, 바로 이곳, 여러분들이 앉아 있는 운문사 청풍

료, 여기가 우리들의 최고의 수행처 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들의 수행의 시작인 것입니다.

여여하게 수행 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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