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그분의 삶을 닮고 싶습니다.

가람지기 | 2008.07.19 11:21 | 조회 2898

그분의 삶을 닮고 싶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제쳐놓고 따로 무엇을 구하겠는가?

일상생활 그대로가 불법이고 도이다. 밥하고 옷입고 마당쓸고 농사짓는데 도가 있고, 밥먹고 대소변 보는데 도가 있다. 도를 모르니깐 도를 따로 찾는 것이다. 무엇이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무엇이 대소변 보고, 무엇이 산송장 끌고 길 위로 다니는지 이것만 알면된다.‘

이 말 속에 저의 은사스님의 삶이 고스란히 다 들어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그 분의 삶을 반이라도 닮고 싶은 대교반 동준입니다.

수행자로서 첫걸음을 떼놓을 때, 모든 것을 부모와 같이 챙겨주시고 사상을 정립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 내 평생 중노릇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밑거름이 되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들의 은사스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게만 있는 분이 아니기에 특별할 건 없지만. 그 특별할 것 없는 곳에서 제 삶의 확신을 얻게 해 주신 그 분의 삶에 대해 지금부터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희 스님은 젊은 시절 다리에 물이 차서 더 이상 수행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주위에선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몰아붙이셨지만. 그 때 스님이 찾아간 곳은 병원이 아닌 해인사 백련암에 계신 성철 큰스님이었습니다.

큰 스님은 ‘니 병 낫고 싶제? 그라모 씰데없이 걱정하지말고 내 시키는대로만 해라’ 하시며 숙제를 내 주십니다. 그것은 60년 동안 매일 1000배씩 절기도하고 정해진 시간에 요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선 성철 큰스님이 유일한 출가동기이자 전부였기에 어떤 의심도 없이 무조건 믿고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확고한 믿음과 노력때문이었는지 병은 깜쪽같이 낫게 되었고, 병은 나았지만 큰스님과의 약속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계속 될 것입니다. 그 속엔 ‘내일’이란 두 글자로 인한 나태함이란 찾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두 글자가 스님 가슴속에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대중스님 여러분, 스님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루 24시간 일상 속에서도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수 십번, 수 백번 저울질하는 제 자신을 돌이켜보면 선뜻 대답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것을 운운하기에 앞서 스님의 선지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무엇보다도 부럽고 내겐 과연 저런 믿음이 있긴 있는 걸까? 자문해 봅니다.

이런 믿음으로 시작된 스님의 절 수행은 우리 도량 전체를 절기도 도량으로 이끄셨고, 출가자나 재가자 할 것 없이 일과절을 통해 자기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무조건 절에 와서 빌고 보시금 많이 낸다고 해서 복 많이 받고 잘사는 것이 절대 아님이요. 직접 땀 흘리고 눈물 흘리며 참회하고 또 참회해봐야만 진정한 자기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란 걸 사무치게 합니다.

그리고 수행을 위해 특별한 날, 특별한 곳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숨쉬고 발딛고 있는 이 자리, 이 공간에서 매일매일 어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실천 수행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한결같음, 변함없는 여일함’이 아닐는지요?

스님이 일과절을 그렇게 외치시고 권하시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또 저로서는 감히 따라가지 못할 스님의 근검·절약정신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좀 지독하리만치 전 스님의 이런 모습이 좋습니다.

겨울이 되면 유난히 추운 해인사, 두꺼운 커튼을 쳐도 어디서 그렇게도 찬바람이 벽을 뚫고 들어오는지... 견디다 못해 저희들은 심야 보일러 최대온도를 틀어놓습니다.

그렇지만 차선책으로 당신이 생각하신 것은 방한용 스티로폼을 재단해서 각 방문마다 그것을 끼우는 것이었습니다. 재단한 부분은 테이프 처리를 해서 지저분한 것은 온데 간데 없고, 보온효과는 정말 뛰어났습니다. 낮에는 뺏다가 밤이면 다시 끼우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스님은 저희들이 만든 그 방한용 스티로폼을 지끔껏 잘 보관해뒀다가 겨울이면 항상 꺼내 쓰십니다.

이런 스님의 삶 하나하나에서 저는 무언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또 스님은 ‘一日不作이면 一日不食’이라는 백장선사의 청규를 그대로 실천하시며 노동의 중요성을 몸으로 고스란히 녹여내고 계십니다. 밭갈아 거름주고 씨뿌리며, 풀메고 수확하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수행자라면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신도들의 보시를 최소한으로 줄여 대중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자립의 방편으로 노동을 생활화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통해 재산을 모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주자의 은혜로 사는 수행자입니다. 이런 시은을 받는 우리들은 복과 지혜를 두루 닦아 그 은혜를 녹여내야 합니다.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뼈에 사무치는 참회의 기도와 근검절약하는 일상생활과 노동을 통해 우리는 한량없는 복을 닦아 지혜롭게 나 자신이 아닌 대중에게 회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힘들고 지친 몸을 핑계 삼아 조금 나태해지려고 할 때, 대중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잠시잠시 잊어버리고 살 때, 그럴 때마다 제가 다시 일어서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이런 저의 은사스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발걸음이 닿지 않은 해인사 깊은 산중, 하루 세 번 예불보며 불기자심하며 사시는 저희 은사스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큰스님께 직접 받아서 지금껏 고이 간직하고 계신 게송 한편 읽고 마치겠습니다

‘ 信施一粒米 重如須彌山

於此道不成 被毛戴角還

今生未明心 滴水也難消 ’

신도가 시주하는 쌀 한 알의 중하기가 수미산과 같음이요.

여기서 도를 이루지 못하면 털을 뒤집어쓰고 뿔을 인 짐승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한 발울의 물도 소화하기 어려움이라.

대중스님, 무더운 여름입니다.

무더위 피하지 마시고 더위와 한판 씨름하며 여일하게 정진하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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