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불보살님 ‘가호지 묘력’ - 혜찬스님

가람지기 | 2007.01.20 12:12 | 조회 3642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혜찬입니다.


대분분의 스님들은 출가를 하고 계를 받고 나서야 어느 강원을 가야할지 결정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출가를 결심하면서 강원은 운문사에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몇 년전에 와 봤던 운문사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기대에 부풀어 설레는 마음으로 왔건만 느닷없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봄철 첫 차례법문 시간에 치문반 스님도 차례법문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법문은 어른 스님이 하시는 줄로만 알고 있었고 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더 황당스러운 것은 여름철부터 바로 치문반 스님도 해야한다니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걱정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가을철 「불교학개론」 첫 시간에 강사스님께서 가사ㆍ장삼을 수하는 스님은 누구나 모두 법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동안의 미심쩍었던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군요. 또 중강스님께서도 요즘처럼 열린 세상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법문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씀하셔서 중노릇과 법문을 따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법문 내용이 걱정이었습니다. 가을철 제 앞 스님의 차례 법문이 끝나자 몇몇 우리 반 스님들이 “안녕하십미꺼 치문반 혜찬입미더”하고 내려오면 만사 OK락 위로하는 척하면서 농담으로 놀렸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운문사 대중스님을 모시고 4년에 단 한 번뿐인 시간인데 솔직히 그렇게 하고 내려올 수는 없지요. 그래서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풀어나가나 하는 고민 끝에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기도 즉 스님들이 축원할 때 불보살님 ‘가호지 묘력’ 또는 ‘가피 묘력’ 또는 ‘가호가피지 묘력’하는 기도 축원에서 주제를 잡았습니다.

‘가호가피지 묘력’이라고 할 때 ‘가호’는 불보살의 위신력으로 중생을 보호하는 일이며 ‘가피’는 불보살이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위해 일종의 힘을 더하는 것으로 ‘가비’‘가위’‘가’라고도 하고 불보살이 가피하는 힘을 ‘가피력’또는 ‘가위력’이라고 합니다.‘가피’는‘현가’와‘명가’로 나누는데‘현가’는 눈으로 보이는 가피로 예컨대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설법하실 때 身˙語˙義의 삼업을 가지고 하는 가피이고 ‘명가’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가피로 의업만으로 하는 것입니다.‘명가’는 또 ‘명호’또는‘명우’라고도 하며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신˙불의 가호를 받는 경우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은 사례들이 많습니다. 우리 또한 그러한 경우가 있을텐데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제 속가 부모님이 가피를 입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게는 70대 부모님이 계시는데 평생 건강하셔서 저희 세 자매는 늘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출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부친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며 한 번 다녀갔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은사스님께 말씀드리고 다음날 가서 뵈니 제가 출가할 때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하신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한 쪽 뇌혈관이 막혔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 그때부터 약을 드시게 되었고 가끔 안부전화로 부친의 건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 건강이 악화되어 검사하니 반대편 뇌현관도 막혀서 다른 처방전을 받아 약을 복용하여 왔지요. 부친의 양쪽 뇌혈관이 막혔다니 제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나름대로 육친의 정을 끊고 출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고 보니 어느 때보다 간절히 부친의 속득쾌차를 빌며 기도가 되더군요.

불행 중 다행으로 가끔은 안 좋을 때도 있었지만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거의 정상인처럼 생활을 하셨지요. 매달 병원을 찾으면 담당 의사 선생님 말씀이 “참 이상하네, 이렇게 좋아지는 경우는 못 봤는데”하며 머리를 갸우뚱 거린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나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은데는 저의 모친의 기도도 있지요. 인류의 모든 어머니들의 발원은 당신의 건강보다는 가족의 건강이었을 겁니다. 저의 모친 또한 평생을 하루같이 새벽에 일어나‘천수경’을 모시고 정성을 불보살님께 기도 드리지요. 최근에는 물리치료를 겸할만큼 악화되었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불보살님의 가피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불보살님께서 의사의 몸으로 나투시어 저의 부친을 보살펴 주신 것 같습니다.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세존께서 무진의보살에게 관세음보살의 방편지력에 대해 말씀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관세음보살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대상에 따라 서른 둘의 몸으로 나투시어 중생을 제도하는 ‘삼심이응신’인 것입니다.

<위산대원선사 경책>에는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此之一學 最妙最玄하니 但辦肯心하라. 必不相嫌이니라

“이 한 배움이 가장 묘하고 가장 그윽하니 다만 믿는 마음만 갖추어라. 반드시 서로 속이지 않느니라“는 뜻이지요.

수행자에게 덥고 추움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이라고 했듯이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어느 때를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대중스님 부지런히 수행정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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