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명색이 수행인이 아니던가! - 능지스님

가람지기 | 2007.09.23 16:27 | 조회 2938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능지입니다.

작년 이맘때, 우리반 한 스님이 이야기 했습니다. 이곳 운문사에서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차례법문이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등에 땀이 한줄 지나가는 것 같더니, 결국 제 차례법문 순서가 돌아오고 말았네요.

그 무덥던 여름은 어느새 시원한 바람자락에 물러나 앉고, 이젠 수확의 계절 가을입니다. 아마도 제 평생 흘려온 땀보다 더 많은 땀을 지난 여름동안 고추밭과 정통에서 다 흘린 것 같습니다. 따고 돌아서면 새빨갛게 약이 오른 고추와 닦아놓고 돌아서면 삭발과 샤워로 얼룩진 정통(대중스님들이 씻는 장소입니다)때문입니다.

처음 강원에 와서는 뭐가 뭔지도 모른채 1년을 살았습니다. 사집이 되고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채 바쁘게만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나는 명색이 수행자가 아니던가! 내게 삶의 지침은 무엇이었지?’

여름방학 내내 정통바닥과 레슬링을 하면서 느꼈습니다. 말은 멀리 귀양보내고, 한 가지라도 알뜰한 생각을 실천해야 하는거구나...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나~ 무~ 아~ 미~ 타~ 불 ~~~

다른 사람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안되는 것에 고소해하지도 말고, 비교나 질투는 그냥 놓아두고, 내 갈길 가야하는 거구나.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가는 것이구나.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작 얼마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참회할까요?

부처님께서는‘스스로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서 어지럽고 괴롭게 사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이다’라고 하셨고,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스려 삶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면 극락세계에서 사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회광반조(廻光返照)


늘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살면 수행은 저절로 익어지지 않을까요? 정통자 문 살살 닫고, 바가지 꼭지 맞춰 얌전히 놓고, 자기가 쓴 대야 한번 더 닦아주고, 삭발용 신발 가지런히 정리해주는 한번의 시선. 우리가 쓰는 모든 것들은 시주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만 살고 말 운문사가 아니고 보니, 조금만 더 아끼고 조심해서 생활하면 어떨까요? 분명히 나는 잘 하는데, 저 스님은 왜 그럴까? 하는 시비분별을 되도록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음조심, 말조심하면서 마음과 몸을 반듯하게 지켜나가는 것도 아직은 잘 안되지만 가고자하는 길을 꾸준히 나아가는 것, 허둥대지 말고 불안해하지 않고서 지도따라 찬찬히 나아가는 것, 그와 같은 돌파력만 갖춘다면 곧 올바른 의식을 갖게 되리라 믿습니다.

서장에서 칼칼하게 살아있는 목소리로 들었습니다.


‘內心無喘이라사 外息諸緣하라

(호흡을 편안히 하여 바깥의 쓸데없는 반연을 끊어빌고 안으로는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거라)

바쁘다는 핑계로 바깥경계에 사무쳐서 남의 일에만 시비한다면 정작 자기 자신은 흘러가는 이목소 물에 던져 놓은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남의 일에 간섭말고 제 일을 잘 하라는 말을 자칫 이기주의적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공한 성품이 사실은 손등과 손바닥처럼 지혜와 자비, 일체공덕으로 가득찬 색의 성품과 맞닿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계에서는 나와 남의 구분이 처음부터 없으므로 自利는 利他입니다.

제 일을 제 스스로 알아서 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그러나 천천히 조심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반성하며 산다면 자신도 모르게 수행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한 저이지만, 운문사 대중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나반존자님이 나눠주시는 사탕을 먹고 쌀을 먹습니다. 새삼 부처님만 바라보고 나반존자님만 바라보며 시주 올리는 많은 분들의 은혜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조금씩 더 스스로를 가다듬어 나갈 때, 이 무거운 은혜와 굵은 땀방울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정통 천장에 낀 까만 때와 함께요.

우리 모두의 수행이 그 때를 벗겨내듯, 힘들지만 보람찬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면 행복하겠습니다. 이제 가을입니다. 잠시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대중스님, 정진 여일하십시오.


행자여! 돌아오라 진리의 고향으로, 망상을 쉬고 가라 헛길을 가지마라

나~ 무~ 아~ 미~ 타~ 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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