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서로에게 容恕를... - 명행스님

가람지기 | 2007.09.23 18:23 | 조회 2684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평생을 두고 제가 행할 수 있는 가르침을 한마디로 내려주십시오”

스승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이니라”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명행입니다.

여러분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만큼의 용서를 행하고 계십니까?

250여명의 대중이 함께 살아가는 이곳 운문사에선 서로 간에 용서해야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소한 일들도 큰 일로 번져가고, 조금 서운한 감정도 아주 큰 화를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우리는 상처를 기억하려고만 하지 상처 준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행여나 잊었다 하더라고 어느 순간 또 다시 떠올리고는 합니다. 내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 합니다. 저 또한 예전에 상처 받았을 땐 아픔이 골수까지 사무쳐 며칠을 끙끙 앓고 절대 용서되지 않더니, 치문,,,사집을 거쳐 사교반이 된 지금은 어떤 상황도 용서되고 어떠한 상처 앞에서도 꿋꿋합니다. 250여명이 함께 움직여야하는 2년 반 동안의 운문사 생활이 저를 강하게 만든 것도 같습니다.

치문반 스님들,,, 지금은 어렵고 낯설겠지만 이곳에서 많이 깎이고 많이 부딪힐수록 상대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나를 다시 점검하게 되는 또 다른 눈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상처 준 상대를 많이 많이 용서하십시오. 용서한다는 것은 상대의 허물을 감싸주는 너그러움과 관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내 마음속의 미움이나 원망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할 때 내 마음속은 온통 분노와 미움, 화로 가득 차 나를 꽁꽁 묶어 놓고 있습니다. 실체도 없는, 단지 현상에 불구한 감정들에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고 상대를 탓하게끔 이끌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용서가 굉장히 상대를 위한 단어처럼 생각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너가 비록 잘못은 했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용서하겠다”거나,,,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상대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아니라, 단순히 상대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그 일에 연연해 하지도 않으며, 원망도, 불만도, 미움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얼굴「容」자에 같을「如」, 마음「心」!! 용...서...

용서한다는 건, 얼굴을 마음으로 예전처럼 같이 대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예전처럼 같아진다.....


부처님 시절 한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길을 가는 중 어떤 행인이 부처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선 태연히 얼굴을 닦아 내시고는 이런 그에게 “더 할 말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서 있던 제자들에게“그가 너무 화가 나서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기에 그러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라고 차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 행인은 낮에 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고민을 하다, 다음날 용서를 빌고자 부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선 웃으면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사소한 문제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마십시오, 나는 상처 받지도 않았고 보다시피 나의 얼굴은 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저 갠지스 강이 어제와 똑같은 강이 아닌 것 처럼 나도,,, 그리고 당신도 어제와 같은 사람이 아닌데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루동안 갠지스강에는 얼마나 많은 물이 아래로 흘러갔겠습니까?

우리 이목소의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도 그 만큼의 삶이 지나갔고, 어제와 오늘의 우리는 다릅니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입니다. 어느 한 성인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내 이웃도 사랑하기 인색한 요즘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선 굳이 원수를 맺으면서까지 그를 사랑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사랑해야 할 원수도 없는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 하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온 세상이 진리로 가득찰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엔 본래 선악이 없다는 것, 용서해 주는 나도 없고, 받은 너도 없으며, 용서가 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안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님을 알 때, 그래서 모든 것이 허망하고 본성이 없다는 것을 알 때.,, 진정한 용서는 우리 모두에게 오는 것일 겁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맺힌 감정에 얽매이거나, 묵은 것에 갇혀서 새로운 날을 등지지 말고, 부디 서로를 용서하며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대중스님들 정진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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