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그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가? - 석우스님

가람지기 | 2007.11.01 07:08 | 조회 2680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석우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에 서늘함이 묻어나는 것을 보면 가을이 오기는 왔나 봅니다. 재촉하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아도 나오는 대로 맡겨 움직이는 이들을 바라보노라면, 지금 이 순간도 맡기고 살지 못하는 제가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만 합니다.


저는 중학교 때 운문사를 처음 왔었습니다. 지금도 넓은 도량이지만, 기억 속의 운문사는 훨씬 크게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혼자서 이곳 저곳을 헤맸기 때문인가 합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이 드넓은 도량에 풀 한포기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저희 집, 정원에 돋아나는 풀들로도 하루 종일 할머니는 바쁘셨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도량은 깔끔하니...

시간이란 수레바퀴가 한창 지나서야 도량 내에선 치문반 스님, 밭에서는 사집반 스님, 미화는 사교반 스님, 반송아랜 화엄반 스님들의 숨은 호미질로 기억 속의 운문사 도량이 정리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중스님들! 이렇듯이 우리가 매일 대하는 풀, 잡초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풀, 잡초를 보통은 일컬어 “제 자리를 벗어나 자라는 모든 식물”로 규정합니다. 한 마다로 백해무익하게만 보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린 정말 열심히 이들을 뽑아댑니다. 저는 숨쉬고, 잠자고, 밥 먹는 일상사 중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사건들로 인해 이는 마음, 시비, 분별, 망상, 화, 분노 등의 것들을 이 잡초와 같이 여겼습니다. 도량 내에서 호미로 아무 생각 없이 쑥쑥 뽑아대는 잡초들처럼 이런 것들이 뿌리 뽑아지기를 바랐지만, 저 스스로가 역부족임을 알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돌들을 내려놓아 임시 방편책으로 넘기기가 일쑤였습니다. 어쩌면 외면이란 게 맞겠지요.


그러나, 문제가 있는 곳엔 사고가 나는 법인지라 눌러 놓은 것들 사이로 질긴 생명력을 드러내는 잡초들을 감당키 어려워졌습니다. 마치 거센 이목소의 물길이 순간의 한 자리에선 물결의 소용돌이가 끝인 것 같으나 물의 흐름 앞에선 서로가 상속되어 한 연장선상에 있듯이 시기가 도래하면 반복적으로 더 강하게 일어납니다. 잡초를 뽑아대듯이 마음에 이는 각양각색의 꼴을 어렵더라고 그 뿌리까지 확인하고 없애야 함에도 한 자리에서 머뭇거리기만 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버겁기만 한 저 자신을 지켜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포행을 갔다가 짙푸른 숲 사이의 풀들을 자세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들 또한 나름대로의 모양을 가지고 큰 나무들 사이에서 그들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벌레들은 잎 사이사이를 의지한 채 기대고 있었으며, 이른 새벽 머금은 이슬은 낮의 숲을 촉촉하게 유지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량 내에서, 밭에서, 뽑아대기만 하던 이들은 놀랍게도 이 자연계에서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그 여름의 쇠비름을, 이 쇠비름은 다른 식물들이 땅 속 깊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줘서, 옥수수 농사를 짓는 곳엔 일부러 쇠비름을 심기도 한답니다. 옥수수 뿌리가 견고하게 땅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말이지요. 또 쐐기풀류나 한해살이 야생나팔꽃 등은 땅 속 깊은 곳에서 영양분을 찾아 보호식물로서 모성 잡초의 역할을 합니다.

즉 표면에 결집되어 있는 광물질을 토양 하부에서 위로 옮겨 농작물이 그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거나 토양을 섬유화 시켜서 비옥하게 만들며 땅속의 동식물에게 훌륭한 환경을 제공하는 등 모든 잡초가 토양의 건축가인 셈입니다.

사람들이 생업을 열고 하루씩 살아가는 동안에 손해를 끼치거나 귀찮고 보기 싫은 존재로 나타나기 때문에 부정적인 식물이라는 테두리의 낙인을 찍어 잡초라 부른 것일 뿐, 원래 잡초란 뽑아내야 할 풀도 없듯이 제가 없애야 한다고 여겼던 마음의 번뇌를 또한 그 체의 근본까지 따져서 내려가면, 도반스님의 얘기처럼 없애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있기 때문에 깨달음으로 가는 우리의 길 또한 있을 수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잡초가 있고, 자연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어른스님께서 그런 법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가? 좋고, 나쁘면, 옳고, 그르며, 화나는 것들이 따로 있어서 오는 것인가?

너와 내가 둘이 아닐진댄 믿고 맡기면 돌려질 것을 왜 그리 돌리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가?"


저는 아직 믿고 맡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내 끌려 다니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 자리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대중스님여러분께 빈한하기만 한 제 살림살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힘들기만 하던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따져서 바라보는 일을 조금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뽑아내야 하는 풀은 없기에,,,,


대중스님 여러분 가을 밤이 깊어 갑니다.

바람에 서걱거리는 후박나무잎에 몸짓이 귓가에 스쳐지나갑니다.

우리 모두 각자들 이 우주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려고 하지 않아도, 의도하지 않아도 나오는 대로의 도리를 우리 모두 몰록 알아가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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