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노스님 이야기 - 동조스님

가람지기 | 2007.11.05 13:52 | 조회 3032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동조입니다.

처음 행자로 와서 삼천배를 하고 노랗게 염색된 머리를 짧게 깎았는데 밤에 감고 잔 머리는 아침이면 정말 사자처럼 세워져 있었습니다.


절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어려워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저는 자주 실수를 하였고 그런 저를 별좌스님은 사오정 행자라고 불렀습니다.

6개월이 지난 뒤 은사스님이 정해졌고 법명을 받은 저는 노스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그때서야 노스님께서는 ‘넌 이제 동조다. 동조’라고 따뜻하게 저의 법명을 불러 주셨습니다. 후원과 법당만을 오고가던 제가 볼 수 있었던 스님은 후원 소임자 스님들과 원주, 별좌스님 그리고 노스님었습니다.

나이가 많으신 노스님은 후원에서 공양을 하시기 때문에 후원에서 자주 뵈었고 그날그날 후원의 이것 저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원주스님은 아주 사소한 모든 이들을 노스님께 여쭈어 보고 함께 일을 하셨고 노스님은 어느 누구보다 먼저 팔을 걷어 부치고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울력이 끝나면 당신 방에 학인들이나 선방스님들을 불러서 맛있는 커피를 직접 타 주시면서 커피가 맛있는 비결은 한쪽 방향으로 오래오래 젓는 게 맛의 비결이라고 말하십니다.

언제나 대중의 귀감이 되어주시는 노스님


처음 후원에서 작은 것 하나하나 지적하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왜 그렇게 했느냐, 저렇게 해라’하실 때는 노스님 정도의 법납이 되면 이제 편안히 시봉을 받아도 되실텐데 왜 힘들게 나서서 일을 하실까 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무섭게 소리 지르는 노스님이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몇 해가 흐른 지금 노스님은 또 다른 모습으로 저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원주스님이 무엇을 물어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하시며 더 이상 어려운 방법을 고집하지 않으셨고 ‘왜 안 나와 보세요?’라고 물으면 ‘원주가 알아서 잘 하더라’하시며 우리가 불편할까봐 괜히 자리를 피하시고 ‘노스님 요즘 새로 계 받은 스님들이 일을 몰라 실수를 너무 많이 해요!’하면 ‘집에서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책만 보고 온 사람들인데 그 정도로 살면 잘 사는 거지’하시며 무엇이든지 잘한다고 잘한다고만 하십니다.

예전의 이것저것 작은 것 하나까지 지적하시던 모습은 이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또 화가 날까요. 지금 노스님의 모습이 예전에 내가 바라던 모습인데 말입니다.


노스님은 예전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노스님 그대로의 모습이신데

노스님은 당신의 근력에 맞게 세월에 순응하며 물 흐르듯이 살고 계시는데 옆에서 보는 저의 좁은 마음이 노스님을 저울질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본인의 기준에서 자신만의 잣대로 상대를 봅니다.

그리고선 맞다, 그르다, 좋다, 싫다 시비를 합니다.

노스님을 보면서 저는 수행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생활 속에 있다는 말을 알 것도 같습니다.


누구나 할 일이면 내가 하고 이왕 할 일이면 최선을 다해 하겠다는 마음으로 수행하겠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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