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수행인의 걸음걸이 - 견유스님

가람지기 | 2007.11.05 16:02 | 조회 2984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견유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수행인의 걸음걸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때 부처님을 직접 모신 일이 있었던 한 늙은 비구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바국다 존자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노비구니 찾아 갔습니다. 부처님이 당시의 수행과 교단의 모습 등을 제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노비구니가 거처하는 암자 바로 앞으로 개울이 흐르고 그 개울위로 철판으로 얹어 놓은 다리가 있었습니다. 우바국다 존자는 제자들과 함께 그 철판다리를 지나 노비구니의 처소로 들어가 인사를 한 뒤 물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수행모습과 교단의 기강이 어떠했는지를 들려주십시오.” 이 말에 노비구니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점은 접어두고라도 조금 전에 비구들께서 다리를 건너올 때 소리를 많이 낸 것만 보아도 불법이 많이 쇠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다리가 철판을 이어 만들어서 소리가 나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아무리 많은 대중들이 다리를 건너 다녀도 소리가 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오늘 존자께서 대중을 데려 오실 때 다리를 건너는 소리가 요란했던 것만으로 미루어 보아도 부처님 당시 비구들의 마음가짐이나 걸음걸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불법이 쇠퇴해진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대중스님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실로 무서운 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가수행자의 걸음걸이가 단정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머리 깎고 제일 먼저 배우는 초발심자경문에도 나오듯이 몸을 흔들며 걷거나 머리를 푹 숙이고 걸어서도 안 되며 껑충껑충 빨리 걸어서도 안 됩니다. 모든 감각기관을 잘 수습하여 바깥인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바르고 곧게 나아가야 합니다. 곧 걸음걸이는 그 사람의 성품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하녀들은 손님이 오면 극진히 모신 뒤 손님이 마루에 올라서면 나올 때 신기 편하도록 신을 돌려놓으면서 신발의 굽이 닳는 모양을 보고 그 사람의 성품에 맞는 차를 가려서 대접했다고 합니다.

바른 마음이 깃든 단정한 걸음걸이!

우리 스님네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대로가 포교가 될 수 있고 행동 하나 하나가 불법을 흥하게 할 수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 10대제자중 목련과 사리불은 출가 전에 이백여 명을 지도하며 살던 외도였습니다. 어느 날 사리불이 길을 가다가 마하남존자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뒤 따라 가서 말을 걸은 것이 인연이 되어 목련과 함께 이백여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부처님께 귀의 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렇듯 우리출가 수행인의 행동 하나 하나가 중생교화와 직결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중생교화 뿐 아니라 몸을 정중히 가지면 마음의 산란함이 쉬어지고 마음의 안정이 깃들면 그것이 곧 선정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들의 걸음걸이는 어떻습니까? 대방을 드나들 때 법당을 드나들 때 소리를 내면서 걷거나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뛰고 있지는 않습니까!


대중스님! 수행자다운 걸음 걸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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